앙스타

[레오츠카] If you love me, come clean.

엘리스.aliceeli 2016. 11. 7. 16:59

츠키나가 레오 X 스오우 츠카사 LEOTSUKA


If you love me, come clean.

If you love me, come clean.




창밖은 겨울, 작은 입김에도 서리꽃 넝굴이 환하게 유리창을 메우며 뻗어가는 겨울, 오후의 교정을 나란히 걷는다. 눈이 내리지도 않았는데 걸을 때마다 사각이는 얼음씹는 소리가 난다. 운동장의 모래가 추위에 얼은 탓이다. 뒷굽에 자꾸만 커다란 돌멩이가 밟히는 바람에 걸음을 옮길 때마다 딱, 딱, 소리가 울렸다. 단정한 걸음소리를 들려주고 싶지만, 오늘따라 바닥에 잔모래가 많은 것도, 하필이면 내가 발을 내딛는 자리마다 커다란 돌멩이가 누워 있던 것도, 그들이 자꾸만 꽁꽁 얼렸던 몸을 왜 그렇게 내 발에 닿을 때면 속절없이 무너트리고 바삭이는지. 입술을 깨물며 걷는다.

그의 그림자를 밟지 않는다. 발끝에 닿을 듯 말 듯, 그의 그림자를 밟을까 말까 못내 망설이다 끝끝내 밟지 않았다. 일주일 내 참다 도착한 디저트 가게에서도 쉬이 고를 수 없어 결국 돌아서야 했을 때처럼 그의 그림자에 닿을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걸음을 멈췄다. 숨을 멈췄다. 노을지는 시간이 길다. 그의 그림자가 길다. 그림자는 내 마음을 모르고, 그의 등은 서서히 멀어져가고, 등이 멀어져서 우리 사이엔 커다란 홈이 파이고, 홈은 거리가 되고, 또 다시 그와 나 사이는 천천히 멀어지고, 거리가 생기고, 그는 나를 돌아보지 않고, 돌아보지 않는 그는 내 얼굴을 볼 수가 없어서 나도 그의 얼굴을 알 수가 없다.

보이지 않는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었다. 평소라면 하지 않는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는 건 모양새가 단정치 못해 칠칠맞은 일곱 살배기 어린아이때나 가능했던 일이었지만, 손이 시렵다면 어쩔 수가 없었다. 주머니에 넣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걷는다. 추위에 곱아들은 손이 제대로 펴지지 않았다. 자꾸만 손가락은 곱추 흉내를 내듯 동그랗게 구부러져간다. 어느샌가 손가락은 저들끼리 껴안기 바쁘다, 체온을 나누려는 것일까, 손가락과 손가락이 비벼졌다. 그래도 차가운 손끝.

발끝엔 여전히 그림자가 닿지 않고, 해는 저물어가고, 그림자는 점점 길어진다. 그만큼 우리 사이가 멀다. 소원하다. 걸음을 멈춰도 이젠 그는 눈치채지 못한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발을 옮겨낸다. 운동장 바닥에 돌멩이들만이 딱, 딱, 운동화 굽을 향해 달려오고 제 딱딱한 몸을 쉴 새 없이 부딪끼며 소리를 들려준다. 마치 반주를 맞추는 드럼처럼 걸을 때 마다 콧노래에 맞춰 돌멩이가 딱, 딱, 딱, 딱, 메트로놈일지도 모른다. 돌멩이가 으깨지는 소리가 난다. 걸음을 멈춘다. 발이 비틀렸기 때문에 어느샌가 신발이 벗겨지고야 말았다. 덩달아 삐끗한 발목이 아팠다. 갑작스레 수정된 운동각으로 인해 고여있던 공기가 발목을 베며 지나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뼘 앞으로 튕겨져 나간 신발을 줍기 위해 고개를 드는데 그가 보였다. 노을을 등지고 있어서 머릿칼은 평소보다 붉고, 빛을 받아 타닥타닥 타오르고, 윤곽이 또렷해진다. 후광이 드리워진 탓에 얼굴엔 새까만 그늘이 드러누워 표정을 알아챌 수가 없었다.

그가 걷는다. 서서히 다가온다. 걸을 때 마다 버석거리는 모래 소리가 들렸다. 신발 밑창을 못내 질질 끌며 흐물거리는 해파리처럼 걷는 그의 걸음걸이 탓일지도 몰랐다. 맞물리듯 맞물리지 않는 우리 사이에 소실점처럼 놓여져 있는 제 신발 위로 그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정도로 가깝게. 꼴사납게 뒤집어져 엉덩이대신 치솟은 뒷굽을 하늘 부끄러운 줄 모르고 드러낸 제 신발과 그의 가지런한 손가락이, 여문 손끝이 닿는다.

그림자가 어느새 제게 닿다 못해 온몸 위에 드리워져 있다. 그림자의 품속에 안겨있다, 잠겨있다, 미동치지 않는다.

세뼘에서 두뼘, 그리고 마지막 한 뼘 만큼의 거리를 남겨두고 그가 제 앞에 무릎을 꿇는다. 손을 내민다. 발목이 붙들렸다. 신발에 발을 꿰어준다. 거짓말처럼 단번에 맞아들어간다. 당연하다, 그건 원래부터 내 신발이니까. 그는 내 발목을 놓고, 나는 다시 양발로 멀쩡하게 땅을 밟는다. 그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내 앞에 앉아있고, 나를 올려다보고, 나는 그를 내려다보고, 이번엔 그의 얼굴에 작은 그늘이 드리워진다. 내게서 떨어져 나간 아주 약간의 응달.

신델렐라같네.

그는 말하고,

……,

나는 대답할 수가 없다.


다시 나란히 걷는다. 한 뼘 사이의 거리는 얼만큼의 거리일까. 손바닥 두 개 만큼의 거리, 수치로 환원한다면 채 20cm도 되지 않을 가벼운 거리감, 맘먹으면 언제든 손등을 어루만질 수 있고, 어깨를 맞비빌 수 있고, 손목을 붙잡을 수 있고, 다섯 개의 손가락을 열 개로 엮어낼 수 있는 충분한 거리, 멀고 먼, 거리.




If you love me, come clean.

(만약 날 사랑한다면 고백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