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스타

[레오츠카] 마음 짐승 (치키타 구구 AU)

엘리스.aliceeli 2017. 1. 13. 20:40

마음  짐승

츠키나가 레오 X 스오우 츠카사,




* 치키타 구구 AU / 설정날조 있습니다.

* 츠카른 전력 60분, 주제 요리로 시작했는데...


집이라면 모름지기 남향이 제일이고, 나무라면 우직하고 무식하게 큰 만큼 여름이면 이파리가 무성하고 낭창하게 바람을 울리는 향나무가 으뜸이다. 같은 거적이라도 기왕이면 살갗 쓰린 빳빳한 마보다야 제 살같이 부드럽게 촉감이 스며드는 비단옷이 좋다. 일곱 번 잠을 자고 일곱 번 허물을 벗어낸 후 고운 실로 견고한 번데기를 만든 누에고치의 비단.


도축장에 실려온 지 반나절 만에 갈기갈기 토막 난 소고기가 최상급, 그 중에서도 닳고 닳은 발굽에 볼품없이 엉덩잇살이 늘어진 그야말로 추풍낙엽이나 다름없는 거친 거죽을 누더기처럼 제 몸에 걸친 늙다리소보다야 윤기가 흐르고 아직 힘 있는 털이 바싹 솟아올라 배내털 성한 어리고 여린 송아지 맛이 일품이다. 늙으면 맛이 없다. 적당한 근육도 지방도 채 돋기도 전에 제 몸대신 밭이나 돌보는 소들은 시종일관 부지런한 대가로 살은 없어 비쩍 곯아 씹다보면 고기인지 그거 질기고 엉긴 고사리를 한 움큼 입에 털어 넣었는지 헷갈릴 정도로 맛이 없다. 뭣보다 지나치게 비린내가 난다. 너무 많이 산 탓에 삶에 너무 저며졌을 뿐이지만 비린내가 난다. 찌든 비린내.


사람도 마찬가지다. 너무 오래 살면 삶에 쪄들어 비린내가 나고 너무 어리면 머리에 피가 마르지 못해 피비린내가 난다. 더더군다나 요즘 같은 혹한의 겨울에 태어난 아기들은 피비린내가 난다. 숙주가 내 곯은 탓인지 인간 애새끼들은 순 곯아 이로 몇 번 뜯다보면 살점은 동이 나고 금세 뼈가 드러난다.


그래서 츠키나가 레오는 주로 가을에 식사를 취했다. 봄은 나른해서 움직이기 귀찮았고, 여름은 지나치게 더워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났으니까. 선선한 남풍이 풀어오는 가을이 최적이었다. 뭣보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니까, 고생한 보람을 있는 대로 처먹은 인간들은 때깔이 고와지고 보기 좋게 살이 올라 지방이 풍부했다. 맛이 좋았다.


인간이 수확할 때 그도 수확한다. 낫을 휘둘러 벼의 모자기를 벨 때 그는 손톱을 세워 인간의 목을 그었다. 푸릇하게 잘 익은 나무줄기를 뜯을 때 맛 좋은 힘줄을 질겅질겅 씹었다. 가을볕에 고루고루 잘 달궈진 사과의 뺨을 베어물 듯 피가 엉겨 붙어 탐스러운 내장을 씹어 삼켰다. 가을은 뭐든 맛이 좋았다. 뭐든.


겨울에는 사냥을 잘 나가지 않는 법이었다. 그에게도 동면은 있었으니 말이다. 한 달에 많아야 두어 번, 그조차도 수면욕이 허기를 누를 때가 많았고, 인간들도 겨울이 되면 온 집안 문이란 문은 다 걸쇠를 채워두고 나오는 법이 적었으므로 사냥감이 적었기에 구태여 나가 허탕을 치고 돌아오기 보다는 이따금 제 마당 앞을 기웃거리는 꿩이나 산새 따위를 주전부리 삼는 게 효율적이고 이득이었다.


때 이른 공복만 아니었더라도. 아니, 새벽에 우는 산새소리가 나무기둥을 타고 울창이 잎사귀들을 온 몸으로 때리며 울어대지 않았더라도, 그래서 이파리와 여린 가지에 할퀴어진 맑은 소리가 갈기갈기 찢겨 바람에 날리는 바람에 그에게 가까이 오지만 않았더라도, 소리 묻은 바람이 그의 귓불을 건드리지만 않았더라도.


새 울음이 제 귓불에 숨을 불어 넣었다. 잠에서 깬 그가 나른한 눈꺼풀을 끔뻑이며 선잠을 자지만 않았다면, 옅게 잠이든 바람에 제 몸을 뒤척이지만 않았더라면, 그 덕분에 요가 멋대로 밀려나간 그의 왼팔이 추위에 내몰리고 한기에 눈을 뜬 그의 코에 짙은 피비린내가 풍겨오지만 않았더라면, 않았다면, 그 순간 울컥 치밀어 오른 허기가 그의 수면욕을 억눌러버리지만 않았어도,

그가 지금 눈발을 헤치며 설원을 걷는 일도 없었을 일이었다.


피다, 피 냄새다. 코를 웃지르는 비린내가 제법 생생하고 싱싱했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인간이 제 가까이에 있다. 츠키나가 레오는 그대로 이불을 박차고 집밖으로 뛰쳐나갔다. 오로지 본능과 후각 만에 의존한 채 눈을 헤집으며 걸음을 옮겼다. 눈은 왜 이 토록 그칠 줄 모르는지, 소리도 없이 내리는지, 기척도 없이 다가와 쌓이는지.


앞인지 뒤인지 분간이 쉬이 가지 않았다. 그저 제가 나아온 길이 뒤이고 나아갈 길이 앞일뿐인 하얗고 차가운 세계, 그는 한 발짝 걸음을 옮겼다. 다시 또 한 발짝, 또 한 발짝, 그 사이 눈발은 더 거세어져 그의 발자국 위로도 눈이 쌓였다. 천천히 눈 아래로 파묻히는 제 발자국에 등을 돌린 채 그는 걸음을 옮겼다. 서서히 눈 속으로 깊게 파묻혀간다.

 

*


차가운 눈 위로 붉은 꽃이 뜨겁고도 선하게 피어있었다. 얇디얇아 초승달처럼 생긴 이파리를 지닌 꽃 한 봉오리가 서서히 커지고 자라고 더 가늘어지는 시간, 여자가 제 피를 쏟으며 꽃으로 변하고 있었다. 머리로부터 갈라져 나오는 꽃, 녹색의 기모노는 어깨선을 타고 흘러 내려 꽃잎보다 굵은 줄기를 만들고 있다.


그녀의 뒤로 널브러진 가마가 눈에 뛴다. 가마는 다리가 부러졌고, 다시 걷는다해도 절름발이가 된다. 노르스름하게 탄 노란 수술을 머리장식삼아 두르고 있다. 몸을 감고 있던 천이나 창호지엔 구멍이 숭숭 나 있어 그 속으로도 눈은 조금씩 파고들었다.


츠키나가 레오는 여자 앞에 엉덩이를 붙여 앉는다. 손목을 쥔다. 망설임 없이 반듯한 송곳니를 드러내 고기를 물어뜯는다. 살결이 희고 고운 편이다, 아마도 어딘가의 귀족 부인일 테지. 일생 궂은 일 한번 벌려본 적이 없었을 테다. 덕분에 인생의 사나운 풍랑 속에 휩쓸려 가본 적도 피로의 낱알 같은 물방울에 뺨을 맞아본 일도 없을 것이기에, 그녀의 살결은 평탄하고 평온하고 평이한 인생처럼 순한 맛을 지니고 있었다. 맛이 순했다.


얼마만의 인육인가, 이빨로 살점을 깨물 때마다 절단부위마다 물감이 번지듯 선혈이 손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피가 팔꿈치를 적실 정도로 죽은 지 얼마 안 된 생생한 살코기. 여자의 가슴팍으로부터 터져 나온 짙은 염료가 그의 앞섶과 손목, 허벅지, 얼굴, 그를 개량반지(改良半紙) 삼아 선으로 이루어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제 온몸이 피에 젖어 들어가는데도 아랑곳 않는 그는 살점을 뜯기에 열중이다. 이토록 맹렬한 허기가 그토록 죽은 듯이 잠들어있던 제 어디에 웅크리고 숨어있던 걸까. 그가 고기를 먹는 게 아니라 허기가 그녀를 먹어 삼키고 있었다.


맹수가 오랜 시간 잠이든 듯, 동굴 속에서 허옇게 빛나는 서슬 퍼런 응시로 제 앞의 포획물을 기다리듯, 그의 속에 잠식해있던 허기가 솟구쳐 올라 그의 이가 닿기 전 그녀라고 불렸던 거죽 하나조차 남지 않았을 때, 그가 마지막으로 삼킨 그녀의 왼손에서 빛나고 있던 반지를 생선가시처럼 뱉어낼 때,

기척이 느껴졌다.


소리를 먹어치우며 내리던 눈조차도 소년을 가려주진 못했다.

그는 기척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귀를 기울였다. 걸음을 옮긴다. 조용히 어깨와 머리카락에, 붉은 뺨과 입가로 시린 눈이 닿았다 맥없이 녹아 버렸다. 어디선가 숨을 묻혀온 눈들이 그에게 스며들기 위해 삽시간에 녹아들고 있었다.


구멍이 난 창호지를 거칠게 뜯어냈다. 절름발이 가마는 이제 뻐드렁니를 가지게 되었다. 남은 문 한 쪽도 뜯어내자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 속에 웅크려있는 형체가 보였다. 잔뜩 구긴 몸을 공처럼 말고 있다. 작은 공.


작은 공은 작은 인간이었다. 자신이 방금 먹어치운 건 어미일 테지. 입안에 다시 군침이 돌았다. 그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작게 씰룩였다. 혓바닥과 잇새에 흥건히 고이던 침이 목구멍 너머로 천천히 흘려가며 그의 내장을 적셨다. 눈이 부셔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가 걸음을 옮겼다.


작은 짐승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하디 순한 눈망울이 피로 젖은 그의 입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도톰한 뺨에는 눈물줄기가 선명했다. 추위에 튼 고운 뺨이 보였다. 붉은 뺨만큼이나 새붉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때 이르게 피어난 동백꽃처럼. 머리를 제일 먼저 베어내자. 머리만을 툭 떨구고 죽어버리는 동백처럼 뜯어내자고 생각하며 다시 한걸음 가까이 다가선다.


츠키나가 레오는 어린 짐승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제 손을 바라보며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고 아차 싶어 손바닥을 대충 옷에 비비어 피를 훔쳐내 보았지만, 그 색은 물은 탄 듯 살짝 엷어지기만 했을 뿐 깨끗해지지 않았다.

달빛을 받아 파르스름하게 빛나는 보랏빛 눈동자 위로 투명하고 얇은 호수가 생겼다.

누구에요?”

오물거리는 입술이 작게 벌어졌다. 눈물과 침에 젖어 번들거리는 연분홍 살점에 다시 군침이 도는 듯 그가 침을 삼켰다.

레오.”

레오?”

제 이름을 따라 말하며 눈을 깜빡여댄다. 눈안에 그렁그렁 맺혀있던 호수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레오가, 엄마 죽였어요?”

역시 방금 제가 먹어치운 건 그의 어미였던 모양으로,

아니.”

어디까지나 저는 먹기만 했으니 죽인 건 아니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럼 누구에요?”

무어라 말할까. 적당히 달래주고 서둘러 잡아먹는 편이 좋지 않을까, 구태여 불필요하게 이런저런 영양가 없는 대화를 주고받을 바에야 먹어치워버리는 게 편했다.


레오는 가마 속으로 상반신을 구겨 넣었다. 작은 짐승은 작은 몸을 더 작게 말며 뒤로 물러섰다. 가까이서 보니 붉은 뺨은 잘 여문 복숭아처럼만 보였다. 아직 어리니 살갗은 질기지도 않고 입안에서 몇 번의 되새김질만으로도 묵처럼 흐물흐물해질 것이다. 작은 몸은 작은 고기다. 쉽사리 먹어치울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빨리 먹어치워버려 아쉽겠지만.


그는 손을 뻗어 천천히 짐승의 볼을 짚었다. 손끝으로 실로 조심하고 사뿐하게. 귀한 자기에 새겨진 새김무늬를 제 지문으로만 겨우 겨우 더듬어보듯. 지문만큼의 접촉. 아이는 따뜻했다.

그는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그러나 실로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이게 마치 이치란 듯이 으레 맹수가 먹잇감을 노려 달려들 듯이 혹은 과녁을 향해 쏘아진 화살이 제 온몸으로 허공을 갈가리 찢어발기는 게 당연하듯, 나무의 뿌리가 흙을 헤집고 제 몸을 터트리듯, 봄날의 여문 꽃씨가 바람에 떠밀리듯, 바람의 숨에 묻혀가는 일이 당연했듯이,

저 또한 응당 그래야 한다는 듯 작은 짐승의 숨통을 노려 이를 세우고 여린 살갗을 물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소년이 눈을 힘주어 감으며 웅크린 몸을 한 번 더 단단히 뭉쳤을 때,

.”

츠키나가 레오가 말한다.

나랑 백 년 할래?”

혀가 깔깔했다. 군침 따위도, 자신을 전복시키던 허기도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췄다.

백 년?”

짐승은 맛이 없었다.

그러니까…… 나랑 백 년 동안 사는 거야.”

백 년 동안?”

, 인간으로 치면 백 년 가약?”

그들은 일생의 반려로 삼겠지만, 그는 어린 짐승을 먹어치워버린다는 게 차이점이긴 했다.

백 년은 요괴인 제게도 긴 시간이었다. 눈 깜짝할 새의 시간이 아니다. 몇 천 번의 달을 봐야만 완성되는 시간.

싫어요.”

?”

엄마를 기다리고 싶어요.”

네 엄마는 이제 없는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제 뱃속에 있으니.

널 혼자 두고 갔어. 널 버린 거지.”

거짓말.”

내가 널 주울 거야.”

다부진 입을 본다.

싫어요.”

싫다는 말에 잡아먹어 버릴까, 싶었지만 곤란하게도 허기가 돌지 않았다. 무척이나 곤란했다.

어스름히 피어오르는 풍경. 샛푸르게 달빛을 반사하는 눈. 소복이 쌓인 눈 속에 웅크리며 떨고 있는 아이. 칼바람으로 이루어진 현을 뜯으며 제 몸의 뼈다귀를 딱딱 종치듯 흔들며 맑은 부딪힘 소리를 허공에 풀어 놓는다. 눈물이 말라붙은 뺨이 부르터있다. 눈물자국이 딱지처럼 앉아 있었다.

우선 아이를 품에 안았다. 제 한품에 쏙 들어올 정도로 아이는 놀라울 치만큼 작았다. 그리고 예상보다 훨씬 더 따뜻했다.


아이가 흘리는 눈물이 제 옷깃을 적셨다. 이따금 뺨에 비벼지기도 했다. 눈물에 젖은 뺨은 축축하고, 시렸고, 얼얼했다. 아이가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릴 때, 츠키나가 레오는 혀를 내밀어 눈물을 핥았다. 인간의 눈물은 짰다. 그리고 맛이 떫었다.

 


*


맛없는 인간을 백 년 동안 기르면 천하진미가 따로 없다, 는 말이 식인 요괴들 사이에선 정설로 내려온다. 백 일도 아니고 천 일도 아닌 자그마치 백 년의 시간. 열매 하나가 맺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백일이 채 못 되는데 별 거 아닌 인간 하나 잡아먹자고 백 년이나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제 안마당 뜰에 싹을 튼 여린 숨들을 돌보는 고운 손마디로 인간을 돌봐야 한다. 가뭄에 제 목 축일 물은 없어도 우는 아이 입에 공갈 젖꼭지라도 물려 달래줄 때처럼 풀을 어르고 달래며 물을 부어주어야 한다. 온 살갗이 튼 거렁뱅이같은 땅에게도 물을 부어가며, 땡볕에 목을 타고 흐르는 땀줄기 하나 조차도 땅을 적시는 일에 기여하면서. 정성어린 손길과 끊이지 않는 관심과 애정을 공들인다. 구체적인 방법은 모른다. 그저 공을 들이고, 들인 끝에 천하진미가 완성된다는 말이 풍문처럼 요괴들 사이로 떠다녔다.


실제로 그 음식을 씹어보거나 맛본 이는 제가 이 세상에서 인간의 고기를 뜯기 시작한 이래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요괴 주제에 성성한 백발을 버드나무 가지처럼 늘어트린 늙은 괴물은 제 입으로 백년 묵은인간은 천하진미라는 둥 최고의 정찬이라고 허풍을 늘어놓고도 실제론 먹어봤다는 질문엔 고개만을 가로져었었다. 츠키나가 레오가 그 후로 만나고 만나온 모든 식인요괴들 또한 늙은 요괴의 대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츠키나가 레오는 지금 마루에 앉아 있다. 뒤편으로 비스듬히 늘어지는 그의 그림자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보면 시원스레 열어젖힌 나무문과 빛바랜 창호지와 푸르스름한 어둠이 스며들은 방, 그리고 이불 한 채. 가운데가 만삭의 임부처럼 부풀어 올라 있다. 그 속엔 간밤에 제가 주어온 작은 짐승이 잠들어있었다.


허옇게 부풀어올라있던 눈들은 낮 동안 땅을 뜨겁게 달구는 햇빛에 녹아가며 담벼락 가장자리에 움츠러든 지렁이 몇 마리처럼 듬성듬성 남아있는 게 전부였다. 따뜻한 빛살이 가늘고 여위어갈수록 허연 지렁이들은 점점 작아지고, 어느 샌가 자그마한 땅거미들에게 잡아먹히기 시작한다. 땅거미들이 눈을 먹고 햇빛을 잡아먹고 한층 어둡고 거대하게 몸집을 부풀리면 햇볕은 뿌예지고 가는 실뭉치처럼 흩어지다가 종내 사라진다. 실 가닥처럼 남아있던 빛이 사라지면 밤이 되었다.


그는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앉아있었다. 그 탓에 목이 빳빳하고 등이 아렸다. 그는 경직된 몸을 풀기위해 고개를 좌우로 가볍게 흔들었다. 그때 그 시선 끝에 솜이불로 만들어진 작은 둔덕이 보였다. 제 이부자리로 파고들어 눈 한번 깜빡이는 일도 없이 죽은 듯이 잠만 자는 작은 짐승이 뱃속에 들어 있었다. 머잖아 제 뱃속으로 들어갈.

그는 이불의 가장자리만을 조심스레 살짝 들추어본다. 알을 품은 어미 새의 겉날개에 붙은 약한 깃털만을 손톱으로 헤집어 뼈를 가늠하듯이 이불을 슬며시 들추고 그 속에 잠든 작은 짐승의 뺨을 눈동자에 담아낸다.


세상 두려움 하나 고여 있지 않은 말간 낯으로 주름살 하나 없이 매끈한 이마로 작은 짐승은 곱게 잠들어 있었다. 손끝으로 뺨을 톡, 하니 건드려보니 뺨이 아닌 입술이 반응했다. 입술을 옹알거리며 미간을 살풋 찌푸리나 싶더니 다시 색색거리는 숨만을 토해낸다.


손으로 몇 번 어루만지던 뺨에 그는 고개를 묻는다. 조심히 입술을 맞대고 이를 내밀어 뺨을 물었다. 시고, 쓰고, 달고, 맵고, 짜고, 형편없는 맛이 났다. 혀끝이 다 알알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혀를 헤집다 바닥에 침을 갈궜다. 제 혀가 닿았던 자리가 번들번들 거리는 뺨으로 세상모른 채 어리고 맛없는 짐승은 다시 숨을 색색 내뱉는다. 그 말간한 이마를 손끝으로 톡, 하니 건드리며 그는,

성가시게 되어 버렸네.”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이어서, 백 년. 하고.

백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