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츠카 + 에이치] réplikə , 레플리카 2
réplikə , [레플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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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피스톨즈 AU + 오메가버스 세계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스토리입니다. 아래의 내용을 유의해주세요.
* 다소 난폭하고 격렬한 소재가 있습니다. 이점 유의해주세요.
스오우 츠카사는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까지도 생각했다. 에이치는 친절하게 손수 차에 올라 츠카사의 집 앞까지 대동하여서 바래다주고 그도 모자라 집안까지도 서슴치 않고 들어와서 부모님과 다과를 나눠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짐. 츠카사의 손을 꼭 잡았다 놓는 것으로 작별인사를 해주었는데 그 온기가 몹시도 다정하고 상냥했기에 츠카사는 뜬눈으로 고심하고 고심했다.
아침밥상에서도 부모님은 못내 츠카사의 답변을 기다리는 눈치였지만, 정식으로 초청장이 온지도 일주일도 안 되었고 고민할 시간이 충분해야 한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츠카사를 닥달하시지는 않음.
그날도 평범하게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길인데 교문 앞에서 에이치가문의 차가 기다리고 있었음. 츠카사는 포기하는 심정으로 그 차에 올라서 에이치네 집으로 감.
에이치는 언제나처럼 상냥하게 웃으면서 예의 그 정돈되고 훈련받고 가면처럼 쓴 얼굴이 아니라 정말로 상냥하고 자연스럽게 마음에서 베어나오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눈가에 주름이 잡힌 눈웃음이 그 어찌나 상냥하던지, 츠카사는 자칫하면 정말로 텐쇼인이 자신에게 사심이 있다고 착각이라도 해버릴 정도였다. 그렇지만 현실은 냉정하게도 자신은 그에게 이용가치가 있는 도구에 불과했고, 자신 역시도 그에게 사심을 품기보다는 그를 이용한다는 생각으로 받아들임이 옳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마음이 심란하기도 심란하였다. 츠카사 입장에서 텐쇼인 에이치는 텐쇼인이라서가 아니라 에이치라는 이름 자체만으로도 무척이나 사랑하고 존경하는 입장이었기때문에. 그래서 스오우 츠카사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텐쇼인 에이치는 재촉따위는 하지 않는다면서 나는 언제까지나 기다려줄테니 말이야, 네 마음의 정리가 될 때까지. 라고 말한다. 츠카사는 닥달하시는 게 아니라면 오늘 저를 이곳으로 부르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라고 말하니, 연인도 아닌 이 사이에 달디 단 말을 뱉는다. 츠카사가 보고 싶어서, 라고 말하면 충분한 대답이 될까? 달콤쌉싸르한 말이다.
텐쇼인 가문을 방문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주변에서도 눈여겨 보는 게 당연했다. 연회파티에서도 그렇고 텐쇼인 에이치는 보란듯이 츠카사를 제 옆에 데리고 다녔다-이것은 어릴 적부터 지속되어왔기에 특별하다 할 것은 아니었지만, 묘한 분위기는 누구라도 쉽사리 감지할 수 있었을터이다.-
츠카사는 고민을 한다. 그날 너무도 긴장했기 때문에 긴장을 풀 요량으로 샴페인을 지나치게 마신 모양인지 츠카사는 에이치에게 양해를 구하고 휴게실에서 홀로 쉬고 있었다. 본래 자신이라면 이런 칠칠맞고 서민스럽고 예의가 어긋날 뿐더러 방정맞을 행동은 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몹시도 피로했기에 츠카사는 소파에 몸을 눕혔다. 언제나처럼 목끝까지 채워놓은 단추가 목을 죄어오는 듯 답답해서 넥타이도 풀러 바닥에 내던져놓고 단추를 서너개쯤을 풀었다. 그제야 숨이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츠카사는 아기처럼 몸을 웅크리고 잤다.
한창 열심히 잠을 자고 있는데 입가에 무언가 축축한 게 다가와서 눈을 게슴츠레하게 떠보니 텐쇼인 에이치가 있었다. 웃으며 깼니?하고 묻는다. 네가 열을 내고 있어서 말이야, 라면서 물에 적신 손수건으로 입가를 조심스레 닦아줘온다. 이어서 이마. 이마를 어루만지는 손. 제가 열이 오른 것인지 그의 손이 싸늘한 것인지, 손가락이 시원하다.
츠카사는 가만히 텐쇼인 에이치를 올려다보고 있다. 에이치는 조심히 이마에 손수건을 올려주었다가 입술을 닦아주다가 목을 닦는다. 에이치는 웃으며 목이 마르니? 라고 묻는다. 츠카사는 고개를 살짝 젓고, 그럼 무언가 필요한 게 있어? 하니 고개를 또 젓고, 에이치는 웃는다.
츠카사가 입술을 끔뻑거리니까 에이치는 응? 하고 귀를 가져다 대고, 츠카사는 결혼, 해요. 라고 말한다. 에이치는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어 당연하다는 듯 웃으며 그래, 하고 츠카사를 조심스럽게 끌어안는다. 모든 것은 그의 계략대로.
결혼을 결정하게 된 것은 갑작스러운 심경의 변화라던가 술에 취한 바람에 이성이 무너져서가 아니다. 텐쇼인 에이치가 맘만 먹는다면-그의 목적은 순전히 제 애를 낳아달라는 것이었으니까, 게다가 그는 알파고 자시는 오메가이다.- 얼마든지 본체를 드러내서 제 목을 물어뜯고 바닥에 굴복시키고 제게 엉덩이를 드러내게 만들어서 몇 번이고 수컷으로 꿰뚫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정하고 상냥하게 저를 대해주지 않았나. 술에 취한 제 곁을 지켜주며 조심스럽게 대해줬다. 마치 금방이라도 깨질 것 처럼 얇은 막으로 이루어진 유리구슬을 대할 때처럼. 혹은 작은 힘에도 상처가 나는 진주를 손바닥에 품어주듯이.
그래서 스오우 츠카사는 결심했다. 텐쇼인 에이치의 반려가 되자고.
문제랄 것이 무어가 있었겠는가, 결혼식 준비는 순조롭다 못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일주일의 시간도 채 되지 않아 결혼식장이 잡히고 신부복이 집으로 오가고 예물교환이 이루어졌다.
하나뿐인 아들을 텐쇼인 가로 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특히나 어머니는 마음이 여린 편으로 걸핏하면 눈물을 내비치곤 했는데 끝끝내 울음을 터트리지 않으려고 용을 쓰는 바람에 되려 스오우 츠카사가 먼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머리를 감싸다못해 제 얼굴과 뺨까지 그늘을 드리워주는 전통식 혼례복덕분에 제 눈물을 발견한 사람은 없었다.
결혼식은 츠카사 가문에서 치루어졌다. 그리고 집 앞을 떠나 텐쇼인 가문으로 입성하기로 하였다. 신혼여행은 아무래도 텐쇼인 에이치의 건강이라던가 하는 문제로 생략하기로 했다. 호화스럽게 보일 것은 다 보이면서 뒤로 보이지 않는 사소한 것들은 모두 간소하고 약소하게 생략하였다.
텐쇼인 가문에 도착해서 에이치가 먼저 차문을 열고 내렸다. 뒤따라 내리려는데 텐쇼인 에이치가 츠카사, 하고 부른다. 네? 하고 츠카사는 그를 올려다본다. 햇빛이 밝은데 그 아래에 서 있는 그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어서 얼굴의 표정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츠카사는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기 위해 실눈을 뜨는데,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니 되려 그의 형태가 부옇게 흐려진다. 안개에 휩싸여있는 듯, 그의 외형이 무너진다.
정말로 내 아이를 낳아줄 거니?한다. 내 아이를 낳아줄거야? 한다. 츠카사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대답. 네. 에이치는 손을 내민다. 그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자 그제야 에이치의 얼굴이 보인다. 그의 얼굴은 다정한 웃음을 빙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묘하게 섬뜩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혼례복을 입은 채였기 때문에 에이치는 웃으면서 우선 옷을 갈아입는 게 좋겠어. 그리고 그 후에 네가 지낼 방을 안내해줄게. 라고 말했다.
같은 방을 쓰지 않는 걸까, 라고 츠카사는 생각했지만 말하진 않았다. 하긴 부부라 해서 언제나 같은 방을 쓰진 않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저희는 어디까지나 학생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으니, 개인의 사정이라는 것도 있으니. 츠카사는 방으로 향했다. 이상하게도 준비된 옷들은 죄다 여성용 기모노였다.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엄연히 아내니까. 라고 생각하면서 츠카사는 혼자서 낑낑대면서 옷을 열심히 갖춰입었다. 부끄러웠다. 허벅지와 허벅지가 맞닿는 기분도, 살갗이 비벼질 때마다 못내 야스런 기분이 들었다.
츠카사는 방문앞에 서서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에이치가 오지 않아서 헤어졌던 그 복도로 가야하나 발을 옮기려는데 말끔하게 양장을 차려입은 에이치가 보였다. 그가 다가와 붉은 색이 잘 어울리는구나, 하고 칭찬해주었다. 제 머리색보다 선명한 명도의 붉은 옷이었다. 깃부분은 눈처럼 하앻다. 엄동설한에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꽃눈들처럼. 츠카사는 뭔가 부끄러워 웃었고, 그때 텐쇼인 에이치가 츠카사의 옆머리를 쓸어 귀 뒤로 넘겼다.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는가 싶더니 츠카사의 머리에 꽂아주었다. 빗으로 만들어진 머리장식이었다.
동백꽃들이 장식된 머리빗은 줄기처럼 기다란 구슬들이 꽃 아래로 늘어트려져 있었다. 기형적인 수술처럼. 노랗고 연두빛이고, 꽃들은 분홍빛으로 빛나거나 루비처럼 붉게 빛났다. 어떤 꽃은 마치 갓 벌린 입술 안쪽의 연붉은 살점같이도 불투명한 빛을 띄고 있었다.
츠카사는 감사하다고 말을 했다. 고개를 숙이는데 짤랑, 짤랑 하고 소리가 났다. 소리가 듣기 좋구나, 라면서 에이치는 말했다. 츠카사는 머리빗을 조심스럽게 매만진다.
이렇게 예쁘게 치장했으니... 가볼까?
어디로 가는 걸까. 어른들께 인사? 그렇지만 어른들께는 아까 식장에서 결혼했다. 어른들끼리 피로연이나 가문간의 별다른 예식을 치르기로 하지 않았나. 츠카사는 그를 따라 발을 옮긴다.
텐쇼인 가문의 안채중에서도 가장 안 채, 정원과 맞닿은 별채라고도 볼 수 있는 넓디 넓은 방. 정원과 가깝지만 실상은 잡초나 잡풀 부스러기들이 성히 잔디처럼 매우고 있고 응달이고 양달이고 할 거 없이 수를 놓듯 피워진 그 곳은 습한 냄새가 풍겼다. 그곳은 어딘지 모르게 공기가 축축하고 무겁게 가라앉아있었다. 제 몸위로 나른하게 쓰러지는 공기들을 받아내며 츠카사는 에이치의 뒤를 따랐다.
여기야.
텐쇼인 에이치가 말한다. 네게 소개시켜줄 사람... 그리고 네 방,
안채인가요?
응, 가장 깊숙한 곳이야. 아마 안전한 곳.
텐쇼인 에이치가 겹문을 연다. 겉문을 하나 열면 안 쪽에 문이 하나 더 보였다. 그 문을 여는데, 문을 지지하고 있는 문틀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사나운 들짐승이 우는 소리. 츠카사는 몸을 살짝 움츠렸다.
겁먹을 필요가 없단다. 내 애완동물이거든.
애완동물이요....?
애완동물이라기보단... 그래, 뭐라고 하면 좋을까.
...?
츠카사가 갖게 될 아이의 수컷이야.
자기가 지금 무엇을 들은 걸까. 츠카사는 당혹스러운 사이로 문이 열린다.
사나운 들짐승을 묶어놓았다. 개꼴이 따로 없다. 날이 선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남자가 있다.
자, 소개할게. 신기하지?
그는 분명히 반류이다. 아니, 이런 반류가 있던가? 츠카사는 제 눈을 의심한다. 어딘지 모르게 기괴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흥분해서 불안정한 상태지만, 이것보렴. 반은 인어고, 반은 사자야. 이런 반류. 본 적이 있니?
네게 부탁했잖아. 내 아이를 낳아달라고. 나는 이런 특별한 아이를 원해. 그치만 아무에게나 씨를 뿌릴 순 없잖아. 하지만, 귀여운 츠카사. 가여운 나의 츠카사. 상냥한 츠카사. 너라면 얼마든지 괜찮아.
약한 너라면 그에게 쉽게 잡아먹힐거야. 순수한 사자가, 혹은 인어가 태어날 거야. 너는 약하고 약하니까.
내 아이를 가져준다고 약속했잖아.
츠카사는 대답하지 못하는데 에이치는 그 방에 츠카사를 집어넣는다. 자, 잠시만요. 하고 말하려는데 뒤에서 짐승이 우는 성낭 소리가 들린다. 츠카사는 몸을 움츠린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그에게는 사슬이 묶여 있어 제게 다가오지 못하리라고 생각하고 안심한 것도 잠시, 철컥이는 소리가 나더니 그의 목에 걸려있던 사슬이 풀렸다. 츠카사는 몸을 웅크린 채 떨고 제 뒷덜미를 강하게 깨무는 이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