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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츠카 + 에이치] réplikə , 레플리카 6

엘리스.aliceeli 2017. 4. 20. 21:33

réplikə , [레플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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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소 난폭하고 격렬한 소재 및 표현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이점 유의해주세요.  불쾌하신 분은 뒤로가기 버튼을 클릭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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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일주일의 휴식기를 거친 뒤에는 삼일간의 교미기간을 갖는 것이 통상적이었으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벌써 한달이 다 되어가도록 스오우 츠카사는 레오와 교미하지 않았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아니 살얼음판 밑에서조차 숨죽여 숨죽여 제 숨을 가리며 살아남기위해 발버둥치는 작은 새끼어()처럼 스오우 츠카사는 숨죽인 채 제 몫으로 주어진 일에 묵묵히 임하였다. 그러니까, 텐쇼인 가의 안주인 역할 말이다.



별탈없이 무사하고 평이한 하루들이 이어졌다. 마치 어제를 복사해 오늘에 붙여놓아도 우습지 않을만큼, 어제를 오늘로 말하고 내일을 그제라고 말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그 어떤 인과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그랬다. 달력이란 무의미한 물건과도 같았지만, 스오우 츠카사는 제 방 탁상 위에 놓인 달력을 응시하고, 이따금 벽에 걸린 시계를 들여다보고,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고 지는 노을을 바라보면서 시간이 변이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 오늘도 해가 지는구나. 하루가 갔구나. 너무도 지루한 하루들이었다.

 




일년에 두어번이나 될까 말까한 종친회가 급작스럽게 열렸다. 텐쇼인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면 적자든 서자든 거부할 권리는 없이 혜택은 없이 오직 의무만이 주어진 자리였다

겉으로 드러내기는 이번 텐쇼인 가의 안주인이 된 스오우 츠카사를 소개하는 자리였지만, 굳이 말하자면 남의 손에 들어간 경매품이나 애호가들이 비밀스럽게 자신의 보물을 공유하는 자리라고나 할까. 말하자면 이미 낙찰되어버린 경매품을 보듯이 그를 품평하는 자리였다

스오우 츠카사는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고, 텐쇼인 에이치는 웃으면서 평소처럼 행동하면 된다고 말하고, 들어선 문안에는 검고 하얀 색만이 가득한 세상으로 모든 사람들이 같은 옷을 입고 마치 도장으로 찍어낸 듯 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어서, 그는 무섭다고 느낀다. 생각한다.


 

텐쇼인 에이치는 스오우 츠카사의 이름과 가문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끝으로 뒷짐을 진 채 나몰라라 하고만 있었다. 스오우 츠카사는 방의 가장 끝,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 그림의 소설짐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네모낳고 무채색만이 그득한 그 방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빨간 기모노를 입고서.


침묵 속에서 길고 긴 시간이 이어졌다. 단상 위에 올려진 스오우 츠카사는 무릎이 저리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푹신한 방석이라 할지라도 오랜 시간 한 자세로 허리에 힘을 주고 바르다 못해 뻗뻗할 정도로 긴장한 상태에서 줄곧 몸을 유지하기란 보통 피로한 일이 아니었다. 누구도 쉬이 행하지 못할 일이었다. 발가락끝 하나조차도 꿈틀거릴 수가 없을 만큼 조용한 정적속에서 스오우 츠카사는 조용히 속으로 숫자를 세어본다. 100이 되면 이 끔찍한 시간이 지나갈 거라고 막연히 소원한다.


우습게도 스오우 츠카사가 68이란 숫자를 말했을 때 우렁찬 박수소리가 들렸다. 스오우 츠카사는 깜짝 놀라 몸이 움츠러들었다. 즐겨찾던 들녘 아래서 늑대에게 방치되어버린 토끼처럼. 모두가 박수를 쳐주었다. 스오우 츠카사는 고개를 떨구지고 그렇다고 꾸벅이며 인사를 해보이지도 못한 채로 그야말로 굳어 있었다. 그런 그를 텐쇼인 에이치가 다가와 일으킨다. 그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안는다. 그의 왼손과 자신의 왼손이 닿아있다. 그의 손이 묘하게 따뜻하다고 느끼며 스오우 츠카사와 텐쇼인 에이치는 조용히 그 방을 떠나왔다.

 

긴장을 많이 했구나.

?

손이 차가워.

 

그는 양손으로 제 손을 포개어준다. 마치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양, 이토록 다정하기 짝이 없는 사람인데, 다정한 사람인데. 스오우 츠카사는 괜찮다며 손을 빼려고 했지만, 텐쇼인 에이치의

 

내가 손을 잡는 게 싫니?

 

라는 말에 뾰루퉁하니 볼을 부풀리며 손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제가 그럴 리 없잖습니까. 제 손바닥 위에 놓여진 츠카사의 손, 섬세한 뼈들이 빚어낸 손등을 보며, 물감처럼 퍼져나가는 붉은 반점을 바라본다. 제 온기가 묻은 손등 위가 얼룩덜룩한 붉은 빛들로 물들기 시작했다. 열꽃들이 제멋대로 피어나고 있었고,

 

이제 따뜻하지?

 

텐쇼인 에이치는 말하면서 웃는다.

 

그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던 말이 무척이나 많았는데, 스오우 츠카사는 그 사실을 침대 위에 몸을 누이면서 자각했다. 하루 온종일 긴장 속에 단단히 응고되어있던 몸이 꼴에 제 침대라고 이불 속에서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물어볼 것이 참 많았다. 참말로.

 

레오,

프리미엄,

그리고 자신,

왜 하필 그와 저인가.

레오와 자기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텐쇼인 가의 아이가 될 수 있을까.

텐쇼인 에이치는 정말로 그 아이를 제 아이라고 부를까,

 

뭣보다 제가 임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임신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지금의 곤란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이 반복될 것이고 종내에는 가치가 없어진 자신은 버려질 것이다. 그에게 소중한 아내라고는 하나 아이를 배는 암컷의 기능을 지니고 있어야 자신은 소중했다’.

자신이 사라지면 레오에겐 또 다른 사람이 찾아오겠지. 자신처럼 새로 선택된 암컷은 레오와 교미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과 했던 것처럼, 그처럼, 입을 맞추고, 어깨를 깨물고, 이름을 부르고, 눈물을 핥아줄 것이다. 레오는, 상냥했으니까.

 

상냥했으니까? 여기까지 생각하고서 츠카사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너무 놀라 제 뺨을 치고 말았다. 정신차려. 상냥하다니 무슨 말이야, 그보다도 알 수 없는 화가 솟구쳤다. 그러니까 심장이 빨리 뛰면서 짜증이 솟구쳤다가도 가라앉고 평온하다가도 초조감이 밀려왔다. 그러다가도 또 잠잠해졌다. 심한 변덕이 제 마음속에 솟구치고 있었다.

 

너무 생각을 많이 했어, 쓸모없는 일에 에너지를 소비하니까 이런 이상한 기분이 이상한 결론이 나오는 것이 분명해. 스오우 츠카사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불을 머리 끝까지 끌어당기며 눈을 힘주어 세게 감았다. 자자. 자자. 우선은 자자.

별 일이 아니다. 제가 지금 고민하는 일 그 어떠한 것도 제 임신하나면 해결될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