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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츠카] 킬 유어 달링.
* 정하님과 어구님과 함께한 레오츠카 연성 사다리타기,
제 주제는 : 수갑 이었습니다.
* 설정 날조 주의,
유메노사키를 졸업한 이후의 이야기. 츠카사는 대학에 다니고 있고, 레오는 다니고 있지 않습니다.
* 레오가 많이 아파요. 건강하고 밝은 분위기가 아닙니다.
/ 下
천천히 눈을 떴다. 속눈썹 끝에 맺혀있던 물기가 눈을 깜짝일 때마다 몸을 흔들다 눈동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습기와 물기로 눈앞이 희뿌옇게 번졌다. 스오우 츠카사는 초점이 맞지 않는 멍한 눈으로 고개 돌릴 여력이 없는지 앞으로 고개를 고꾸라트린 채 눈꺼풀만을 들어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한다.
손을 들어 얼굴을 문지른다. 눈가를 닦는다. 몸을 일으켜 세웠지만, 금세 휘청거리며 중심을 잃고 말았다. 다리가 흔들렸다. 꽃들이 너무 많이 핀 탓일지도 모른다, 꽃이 무거우면 꽃을 잘라내 버려야지, 그래야 하겠지. 입술을 깨물다 조용히 걸음을 옮긴다.
같이 꽃을 보다가 돌아서서 헤어졌다. 별다른 기행의 전조가 그에게서 보이지 않았다. 평소와 판박이처럼 닮아있던 그 일상 속에서 두 사람은 손을 흔들고, 엷게 웃어 보이고, 붙어있던 그림자를 떼어내 각자 나누어 가지곤 반대편으로 걸어왔을 뿐인 그런 일.
종내 뺨을 따갑게 쓸어대던 봄볕이 죽었을 때, 병실에 앉아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아야만 했던 스오우 츠카사는 생각했다. 일의 전후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연결시킬지를, 박음질할지를, 끝끝내 버티다 터져버린 실밥 위로 비어져 나온 솜 같은 그의 기행과 기행을.
사실은 그 엉망진창의 기억이 현실의 일부라고 말해주는 편들이 좋을까, 사실 처음부터 그 솜들은 모두 당신이었고, 솜을 토해 내버린 실밥은 내가 끊어버리고 만 거라고.
망가진 건 아마 당신이 아니라 망가트린 나라고.
눈을 뜬 당신은 기억을 멋대로 기웠다. 당신은 꽃을 보러 가자고 말한다. ‘또’라는 말은 없다. 처음인 양 말한다. 올봄의 꽃을 보며 ‘첫 꽃’이라 말한다. 소리 없이 ‘첫 꽃’들의 시체가 당신의 어깨 위로 쌓여만 간다.
당신은 스산한 마음으로 그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
☆
심야를 한참이나 넘긴 시간에 전화가 울렸다. 한 끗 동요도 없이 스오우 츠카사는 고른 음색의 대답만을 내뱉었다. 평이한 대답들이 이어졌다. 괜찮아요와 괜찮아요 사이에 쉼표처럼 들어가 있는 ‘네’의 반복으로 전화가 끝났다.
자정의 취소야 늘 있는 일이나 다름없었기에 별다른 충격이나 서운함도 마음에 깃들 수가 없었다. 홀로 먹는 저녁 식사나 부모님 대신 사용인이 손을 흔들어주던 수업 참관일이나 운동회들이 반복됨으로써 당연히 ‘기대’란 소멸해버리고 외로움에 노출된 마음도 언제부턴가 외롭지 않아버렸다. 오지도 않을 이를 기다리느라 힐끔거리는 일도, 몸을 뒤척이며 뒤를 보는 일도, 헛된 기대를 품고 통신문을 건네었다가 홀로 되돌아온 날 제 손으로 구겨서 쓰레기통을 향해 버리던 일도, 모두 제 손으로 할 수 있다.
외로움도 천천히 쓰레기통에 버려두고 싶었다. 제 손으로 찢어내던 그 통신문처럼. 쓰레기통 안에서 낙엽처럼 으스러져 가던 잔해들처럼 버려두었던 마음을 누가 꺼냈을까.
누가 그 쓰레기통을 열었던 걸까.
“외로움에 무뎌졌다는 건 결국 그만큼의 외로움이 몸을 채우고 있단 말이지?”
그가 열었었지, 생각한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건, 결국 뒤에 누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잖아.”
“뭐, 반쯤은 그래요. 그래도 괜찮지 않나요?”
“뭐가?”
“괜히 기대했다가 실망해버리는 쪽보다야, 애초에 기대부터 안 하면 마음이 평온해진단 말이죠.”
“흐응.”
그는 팔짱을 낀 채 콧소리를 낸다. 끙끙거리는 강아지처럼 머리를 긁적거려 보인다.
“뒤를 돌아봐.”
돌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그가 스오우 츠카사의 뒤로 가선 쩌렁쩌렁 소리를 친다.
“대체 무슨……”
“얼른!”
“네, 네……”
변덕스런 이의 비위를 맞추는 자신에 대한 한심스러움이 가득 찬 무거운 한숨을 내뱉으며,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정확히 저와 평행점을 찍는 그 자리에서 그가 웃으며 손을 흔들어 온다. 스오우 츠카사는 무슨 영문일까, 생각하면서도 손을 흔들어본다. 그라면 필시 제게 손을 흔드리라 말할 테니.
“이제 맘껏 뒤를 돌아봐도 돼.”
“……?”
“뒤를 볼 때마다 내가 있어 줄게, 알겠지?”
활짝 웃는 그를 향해 스오우 츠카사는, 그는 눈을 깜빡인 채로 입술을 씹는다.
“그럼……”
전 뭘 해드리면 되나요, 묻는다. 그는, 츠키나가 레오는,
“내 곁에 있으면 되지 않을까?”
하고 말한다.
“그런 단순한 걸로 되는 걸까요?”
“응, 네 옆이 앞으로 내가 살아갈 장소가 될 거야.”
바람이 분다. 눈앞에서 머리칼이 휘청거리는 바람에 바로 앞에 있는 그의 모습조차도 온전히 담을 수가 없다.
“내가 살아갈 장소만 내어준다면 그걸로 충분해.”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시야 끝에 간신히 매달려있다.
“네 옆이면 그걸로 좋아.”
그의 눈동자가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하게 빛났다는 사실만이 또렷하다.
☆
느릿느릿 동이 터온다. 하늘은 어물거리며 천천히 낯을 환히 밝힌다. 줄곧 허공에 고여있던 시선이 그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짝이며 빛을 분산시킨다. 하늘 한편에 빛나는 점, 해가 떠올랐다. 침대 위에서 무릎을 껴안고 웅크리고 있던 스오우 츠카사는 벽에 기대어 선잠을 자기 시작한다. 또 병실의 꿈을 꾼다.
부질없어도 좋을 꿈이다.
여전히 말이 없는 그는 침대에 누워 두 눈을 꼭 감은 채로 잠들어 있다. 새벽바람이 닿은 그의 뺨은 샛푸르고 핏기가 가셔 파리하다. 허연 얼굴 같은 도화지에 그려진 그의 멍은 푸른 꽃이고, 이제 갓 제 손목에 움트기 시작한 그의 손톱자국은 가는 새김질로 뚜렷해지는 봉오리가 된다. 살갗 위로 초승달처럼 떠오른 그의 손톱자국에 자신에 손톱을 넣어본다. 아프지 않았다. 아프지 않았다.
눈을 깜빡일 때 속눈썹이 요동쳤다. 어느새 잠에서 깬 그가 저를 눈동자 속에 품고 있었기에 스오우 츠카사는 손가락 하나조차 까딱, 까딱할 수 없었다. 지긋한 시선의 그가 손을 내밀어 와 저의 손목을 내어준다. 손목을 내어주자 이번에는 뺨을 구해온다. 뺨을 내어주니 입술을 달라 칭얼댄다. 싫다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이 낯선 곳에 그를 홀로 버려두고 뛰쳐나간다면, 그는 따라올까,
외롭게 남을까.
제 등에서부터 직선으로 비껴가는 쇠창살이 드러낸 검은 치열들을 느낀다. 창문의 잇새로 들어오는 바람이 불러일으키는 만약의 가능성을 생각하다,
“스오?”
고개를 숙인다. 그의 잇새에 입술이 거칠게 물렸다.
다시 생각한다. 만약의 가능성, 여름 장마 이후면 겁 잡을 수 없이 자라나 버리는 풀줄기처럼 혹은 일순 쏟아져 내린 소나기의 찰나에도 젖어가던 세상의 온갖 선들을 생각하면서, 습기에 찢기던 가냘픈 세계를,
제멋대로 뻗어가고 젖어가는 생각들을 생각한다.
뺨을 더듬고 있는 그의 손톱 하나에 생각 하나를, 손목을 짓누르는 그의 지문에 또 생각 하나를 붙였다가 입술 사이로 파고들어 제 입술 안으로 흥건한 침을 내뱉는 그에게 붙들린다.
“날 버리는 상상을 했어?”
눈과 눈이 맞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그가 말한다. 속눈썹과 속눈썹이 한데 엉켜 들어간다. 마치 한 몸처럼. 그의 입김이 저의 숨이 되고, 제 날숨이 그의 들숨이 된다. 눈앞에 보이는 전경은 이른 봄에 멋모르고 섣부르게 뛰쳐 든 햇살처럼 노랗게 빛나는 눈동자 한 쌍이 전부인 세계.
“아니―”
대답이 그의 입속으로 먹혀들어간다. 붙들린 손목이 아리다. 뺨을 매만지는가 싶던 손이 부드럽게 목의 능선을 따라 기어가다 목덜미를 옥좨온다. 손톱이 목을 파헤칠 듯 날을 세우며 긋고 긁고, 살갗을 파헤치다 떨어져 나갔다. 손톱이 떨어져 나간 그 자리에 빨간 열기가 달라붙어 있었다. 팔이 몸을 감싸 안는다. 멋대로 자신의 머리칼에 뺨을 부비고, 입술을 붙여내고 이름을 부른다. 억지로 맞붙은 그의 온기와 자신의 온기 사이로 소리가 들린다. 그가 꿈틀거리는 소리, 살갗 아래 주먹만 한 선붉은 심장이 내뱉는 고동 소리가.
답답할 정도로 억세게 저를 감싸는 팔 속에서 온기를 느낀다. 다시 한 번 이대로 괜찮지 않을까. 않을까?
“죽을 거야.”
차분한 음색의 목소리가 가지런히 정돈된 마음을 들려준다. 목소리가 귀를 긋고 지나갔다. 그 말끝에 엷은 소금기가 배어져 있다고 기억하게 된 건 자신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얼른 밖으로 나가고 싶어. 이곳은 너무 따분해.”
차분한 음성은 어느새 어리광부리는 어린아이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투덜거리는 목소리를 따라 몸이 떨리고 울린다.
“스오랑 하루종일 있고 싶어.”
“지금도 하루종일 있잖아요.”
“학교에 가잖아. 저녁에만 있어 주면서.”
볼멘소리.
“저는 아직 졸업하지 않았으니까요.”
“스오를 껴안고 자고 싶어, 평생.”
침묵……
“스오는?”
그는 대답을 강요한다. 원하고 있다. 스오우 츠카사는 입술을 열고 천천히 입술을 축이고 숨을 뱉는다. 얄팍한 목소리가 섞여 있는 숨이었다.
“네.”
단문으로 종결되는 마음.
“좋아.”
그는 녹 하나 깃들지 않은 호수처럼 말간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그날 그대로 병실을 빠져나와 그를 떠나왔다면, 으로 시작되는 되새김질을 제 혀 위에 올려놓고 녹이는 일에만 묵묵히 집중한다. 백일몽처럼 무너질 생각들을 쌓았다가 제 손으로 무너트린다.
텅 빈 마음으로 텅 빈 집에서 살아가는 일과 한낮 백일몽에 가까운 말을 뱉으면서 위태로운 온기 속에 몸을 맡기는 일, 둘 중에 무엇이 더 행복할까? 어느 곳에 떨어트려도 겉돌아버리는 물과 기름처럼 아무리 휘젓고 온기로 덥혀보아도 엉겨 들지 못하는 깊은 이질성,
꽃이 아닌데도 꽃이 피는 저와 거듭 꽃잎을 붙여내는 그와,
문밖에서 존재할 뿐인 자신을 자꾸만 어둡고 축축한 제 성으로 불러들여 ‘나’를 살아갈 장소라고 말하는 그와,
이제는 뒤돌아보지 않는 외로움을 가진 자신과 자꾸만 손짓하며 이리 오라며 부르는 그,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손을 나누고 몸을 나누고 숨을 나누고 싶어 하는 그와,
손길이 더해질수록, 하루가 거듭될수록 꽃이 아닌 하나의 포자처럼 짓물러가는 자신이,
“누가 더 불행한 걸까요.”
말을 곱씹고 곱씹는다. 곱씹어본다. 어차피 토해질 음성 따위는 없었으니까 대답은 삼킨다. 음절 하나하나를 하릴없는 이처럼 잘게 부시고 침으로 녹이며.
☆
느릿느릿 밝아오는 여명을 바라보다, 숯처럼 검은 어둠 사이로 갈라지기 시작한 결 새를 헤집고 바스라트리기 시작하는 감푸른 새벽을 보며 집을 나선다. 학교에 가야 했고 그의 집에도 들러야만 했다. 그가 죽었는지 죽지 않았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오전 내 맑던 하늘은 채 12시도 되지 않아 해가 저문 듯 우중충해지더니 삽시간에 검은 분을 얼굴에 펴 바른 채 땅을 향해 침을 뱉기 시작했다. 바닥에 자잘한 멍이 든다. 얼룩투성이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거칠고 굵직한 빗줄기에도 동요치 않고 스오우 츠카사는 젖어 들어가는 지면만을 눈에 담고 있다. 비로 물들어가는 세계 사이를 노려보다 우산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빗줄기 사이를 꿰뚫으며 걸어갔다. 미지근한 빗물들이 자꾸만 제 속으로 파고들려 애를 쓴다. 머리칼 끝마다 장식처럼 맺혀든 빗물을 구태여 치우거나 거둬내는 법도 모르는 이처럼 자꾸만 자신의 눈가를 적시고, 속눈썹을 타고 흘러드는 빗물을 방치한 채로 걸었다. 한겨울 창가마다 서리꽃이 피듯이 눈앞이 뿌옇게 변하면 눈을 깜빡였다. 개인 듯이 맑아졌다가도 다시금 비의 잔상만이 떠올라 눈앞이 희부윰했다.
습관성으로 입안에 넣고 삼키는 두통약처럼 발은 구태여 인위적으로 옮기지 않아도 제 알아서 길을 찾아 걷는다. 구태여 응달을 찾을 필요가 없이 흐린 날인데도 불구하고, 바로 눈앞에 존재하는 사물 자체도 온전히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장댓비가 쏟아지는 어둡고 습윤한 날임에도 불구하고, 그늘 속에서도 그늘을 찾아 걷는다. 빗물에 젖다 못해 안까지 그득 차 걸을 때마다 찌걱거리는 신발을 신고 걷다 보니 물 위를 걷는 것만 착각이 일었다.
온몸이 젖었다. 젖지 않은 곳이라곤 없었다. 모든 것들이 축축히 젖어 들어간다. 시야조차 온전하지 않아 단단한 제 외벽을 망가트린 세상은 그저 한 덩어리로 변하기 위해 서로를 껴안고만 있다. 그런데도 몸이 시리다.
물기 어린 손끝과 발끝으로부터 추위가 번지기 시작했다. 손끝은 빨갛게 달아올랐는데 그 온기는 생뚱맞게 차갑고 시리고, 퍼렇게 뜬 입술은 그토록 진한 한색을 지녔으면서도 허공중으로 뜨건 입김을 희뿌옇게 퍼드린다. 차분한 온기를 소중히 간직한 날숨, 빗줄기에 제 몸을 문지르다 천천히 사그라졌다. 몇 번이고 그 숨들은 반복되었다. 그의 집 앞까지 와서도.
맨션의 계단을 오르며 그는 숨을 내뿜는다. 물에 빠진 건초더미와 다름없이 변한 몸이 무척이나 무겁다. 제가 지닌 온갖 선들이 비를 껴안은 탓에 무겁다. 희붐한 시야를 문지른다. 눈앞이 아른아른거린다.
“스오.”
비 오는 날에 버림받으면 무척이나 처량한 기분이 들 거야, 새끼고양이는. 비에 젖어버린 몸이 차갑고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건 금방일 테니까. 식은 몸으로 처량하게 빗물을 맞으며 오지도 않을 애정을 기다리다가 죽어버리지 않을까.
집 앞에 무릎을 웅크린 채로 앉아있는 그의 맨발이 보였다. 스오우 츠카사는 줄곧 한 번도 닦아내지 않던 눈가를 그제야 손을 들어 느릿느릿 닦는다. 세심하고 꼼꼼하게, 물기를 문지르고 닦는다. 그럼에도 얼굴이 축축했다. 눈이 무척이나, 축축했다. 눈으로 기어들어간 빗물들이 나오지 않는다.
집 앞에 여전히 웅크려 앉은 채 자신에게 두 팔 벌려 제품만을 내보이는 그를 바라본다. 그의 앞으로 가 똑같이 무릎을 굽혀 웅크리듯 앉자 그의 팔이 그의 등을 감싸 안았다. 축축할 텐데, 저를 안는 바람에 젖어 들어가는 그의 옷깃을 본다.
뺨과 뺨이 맞붙어버릴 정도로 가까웠기에 그의 체온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제 뺨 위로 퍼지는 그의 몸의 차갑고 시렸다. 제 등을 더듬는 그의 손끝도 분명 얼음장처럼 차가울 테지,
시선을 바닥으로 내린다. 붉디붉다. 금방이라도 솟구칠 듯 시붉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얼음처럼 시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차가운 손과 차가운 발이 닿았다. 둘 다 벌겋지만 차가웠다.
“집 앞에 고양이가 버려져 있었어.”
그런 건 없었다.
“불쌍하지?”
스오우 츠카사는 고개를 끄덕일 때처럼 눈꺼풀을 천천히 아래로 떨어트렸다. 눈을 감는다.
“버려지는 걸까?”
“아니요……”
눈을 뜨지 않은 채 입술만을 달싹거리며 답한다.
“정말?”
“네.”
귓가에 닿는 습기가 뜨겁다. 그의 입술이 제 귀에 바싹 붙어온다. 귓불과 귀바퀴와, 그 휘어 들어가는 여린 선 모두가 그의 입술과 닿는다. 뜨거운 숨들은 곧 스러져간다. 맥없이 고꾸라져버리는 서리꽃처럼.
“날 사랑해?”
그는 묻고, 스오우 츠카사는……
“네.”
빗소리가 점차 거세진다. 허공을 잘게 잘게 찢어간다. 찢기는 허공들은 비로 이루어진 투명한 실들로 맞춰 기워졌다가도 곧 날카로운 사선의 빗줄기에 꿰뚫리고, 뜯겨지고, 엉겨 붙다가도 다시 잘게 잘게 조각나고, 한데 응어리지고, 부옇게 번져만 가고, 허공은 곧 비와 한 몸이 될 듯 굴다가도 끝끝내 합쳐지지 않았다.
정경 위에 하얀 박음질 같은 빗줄기만이 가득해져 간다. 그 무수한 땀의 기록들 속에서,
“네.”
희미한 대답은 곧 사라져 없어질 것이다.
“죽을 거야.”
그의 품에 안기다 못해 마치 제가 그에게 잡아먹히고 싶어 안달 난 듯 그가 파고들어 온다. 그는 그의 가슴에 고개를 묻고 있다. 안쪽으로부터 그와 그의 품 사이에 줄곧 고여있던 습기가 어느새 따뜻하게 달구어져 있다. 서로의 품 안팎의 온도차를 느끼며, 미지근한 체온을 나누며 서로에게 눌어붙고 있다.
“죽을 거야, 스오가 버리면……”
스오우 츠카사는 눈을 감은 채 그의 손길 안에서 힘을 뺀 채 축 늘어진다.
“네.”
그의 품에 자신을 맡기고만 있다. 제 몸을 가둔 팔을 풀 생각은 없었다. 조심히 손을 들어 그를 마주 안기 위해 팔을 들고, 그의 등을 더듬고, 어루만지고, 감싸주다 꽉 붙들었다. 그의 등에 딱지처럼 제 손가락들을 붙여내었다.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지 않을까. 외로운 것만 같은 나와 내가 없으면 죽어버리겠다는 말을 사탕처럼 까먹는 그,
“또 죽어버릴 거야.”
그의 따스한 온기에 죽어버리겠다는 말은 제멋대로 녹아 제 안으로 흘러든다. 녹진하게 굳는다. 스오우 츠카사는 손에 힘을 주어 그의 등을 붙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 고여든 공기가 서서히 따뜻해져 간다. 숨과 숨이 섞인다.
더 이상 들려오는 말소리는 없었다.
- 終、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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