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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터널 선샤인 설정을 차용,
과거 연인이었지만, 지금은 모든 기억을 지워서 서로에 관해 모르는 상태로 환자와 선생으로 만나게 된 레오와 츠카사의 이야기.
정신과 환자 레오 X 상냥한 선생님, 츠카사.
* 지인에게 풀어드린 썰이기 때문에 문장이 다소 단정치 못한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약간의 수정은 했습니다만 가독성은 보장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허나 즐거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츠키나가 레오 X 스오우 츠카사 [Tsukinaga Leo X Suou Tsukasa ]
정신과 환자 레오에 상냥한 선생님 츠카사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터널 선샤인처럼 둘 다 과거에 연인이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지워져서 서로를 못 알아보고 있는 상태인 거고,
츠카사는 기억을 잘 지워서 평범한 생활도 무리없이 하게 되었고, 공부도 하고 그 어렵다는 의대에도 입학해서 의대도 졸업하고 의사도 하고 있고, 교제중인 여자도 있고(가문이 맺어놓은),
레오도 기억 자체는 잘 지워졌는데 잔존하는 감정이 있어서 일상 생활에서 조울증같은 증세가 심화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과 소통에 무리도 있고, 일상생활이 전혀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러서 여러 의사들을 전전하다가 추천받아서 츠카사에게 오게 된 거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레오 스스로도 그게 무슨 감정인지 몰라서 상담을 할 때마다 어려움과 곤란함이 있고, 그렇기에 호전되는 차도는 그다지 보이지 않는데 츠카사와 이야기를 할 때는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평온한 감정 때문에 빼먹지 않고 잘 오고 있고 그러면 좋겠어요.
그런데 츠카사도 레오에 관한 기억을 모조리 다 지웠고, 레오도 츠카사를 지웠으니까 서로 못 알아보는 상태에서 매일 상담을 하는 거에요. 우선적으로 일주일간만 주기적으로 상담을 받아보고 그래서 내가 잘 맞는다고 당신이 판단이 서면 그때 자신을 상담주치의로 지정해달라고, 츠카사가 말해서 레오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죠.
레오가 이전에 만났던 의사들과는 문제도 많았고, 사이도 좋지 못했고, 그렇다는 걸 이미 츠카사는 전 의사들에게 전해들었기 때문도 있고, 자기 욕심으로(그러니까 레오를 고쳐보겠다는) 환자를 망쳐선 안 되는 문제니까요. 레오에게 무조건 선택권을 주자는 생각으로 일주일 간 편안한 마음으로 레오를 대해요.
그런데 레오가 유독 츠카사에게 친근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거에요. 평소같으면 원래는 대화를 나누고 그러는데 그날은 레오가 츠카사를 가만히 관찰하듯이 들여다보다가 상담이 끝났다고 말하는 츠카사의 말에 레오가 앞으로 상담을 오겠다고 말을 해요.
츠카사는 그렇다면 수요일이 좋겠다고 말을 하고, 레오는 주기적으로 츠카사를 만나게 돼요. 차도를 보인달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츠카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가면 감정적으로 안정되기도 하고 불안도 줄어드는 추세여서 레오는 치료에 꽤 만족하고 있고, 츠카사는 자신과 너무 다른 방법으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라는데서 솟아오르는 호기심이나 왠지모를 친근감이 있어서 츠카사가 마음에 든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마음에 들었다, 라고 생각을 하고 자각을 하는 순간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서걱거리는 느낌이 나고, 다시 이전처럼 불안이 심해져서 수요일의 츠카사의 상담일에 찾아가는데도 불안한 증세를 못 떨치고 있으니까, 츠카사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서 레오의 등을 쓰다듬어줘요. 레오는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끼고 그런 츠카사를 껴안아보는데, 츠카사는 당혹스럽지만 지금은 환자를 다정하고 상냥하게 대하는 게 순번이고, 환자와 의사사이의 신뢰가 중요하고, 이런 행동을 해온다는 건 자신을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일테니 거절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그를 껴안아주어요.
껴안고 있다가 상담 시간이 다 지나서 츠카사는 다음주 수요일에 오시면 된다고 말을 해요. 레오는 알겠다고 말하고 돌아가요. 그 주는 무언가 평온하게 지나가고,
다시 상담일이 되었을 때 저번처럼 불안하게 지냈다고 말을 하면 어떻게 달래주어야 하나, 신체적인 접촉은 최대한 피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고 배워왔기 때문에 고심을 하는데 그랬던 우려와 달리 레오에는 츠카사에게 접촉을 해오지 않아요. 그렇지만 다만 뚫어져라 바라보는 거죠. 시선이 너무 강했어요.
츠카사도 본디 환자와 이야기를 나눌 땐 눈을 맞추고 다정하게 눈웃음을 지어보이고, 입가엔 사근사근한 미소를 띄어가면서 이야기를 해주는 편이였고, 이전에도 레오와 무리없이 그렇게 눈을 맞추고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제대로 쳐다봐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바라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츠카사는 자신이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를 대면서 레오와의 상담을 일찍 끝내요. 레오는 알겠다면서 츠카사를 바라보다가 사라져요.
츠카사는 꺼림칙한 기분을 지울수가 없고, 자신이 최초로 환자를 거부하고 있다는 생각과 자각이 들면서 다음 상담부터는 다시 정신을 차리자고 생각해요.
다행스럽게도 다음번에 만났을 땐 이전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가능했어요. 레오의 시선이 강렬하지도 않았고, 그렇기에 츠카사는 부담없이 미소를 띄며 레오와 간간이 눈도 맞쳐가며 이야기를 들었죠. 상담이 무사히 끝난 거 같아서, 앞으로도 이렇게 지내면 되겠구나 하고 안심한 츠카사는 언제나처럼 웃음을 지으며 레오를 향해 다음주 수요일에 오시면 된다고 말하죠.
그렇게 말하며 진료차트를 적고 있는 츠카사의 손을 레오가 잡아보는 거에요. 저번과는 다른 접촉에 츠카사는 놀랐고, 자칫 잘못해서 지금 흥분시켰다가는 위험을 당할 수가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저번처럼 조용히 반응을 하는데, 레오는 츠카사의 손을 잡으니까 친숙한 느낌이 들고 친밀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손등을 연신 어루만지고 비벼대다가 손을 떼어요. 츠카사가 "이제 그만두어 주세요," 라고 말했기 때문에.
츠카사는 다음주 수요일에 상담에 꼭 오시라는 말을 하고 레오는 알겠다면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돌아가면서 뭔가 츠카사의 손등을 만졌을 때 느껴진 묘한 기시감을 곱씹고 곱씹으면서 돌아가죠.
그 의사는 왜 그렇게 친숙하지? 나와 자주 만나서? 내 담당의라서 그런 걸까? 이렇게까지 마음이 맞아본 의사는 처음이라서? 상냥해서? 하지만, 그러기엔 지나치게 친숙한 느낌이 들고 친밀한 감정이 든다고, 생각해요.
츠카사 역시 오묘한 기분이 드는데 그걸 단순히 자신에게 육체적으로 접근한 환자는 처음이었고, 레오가 자신에게 오면서 확실히 상태가 호전되었기 때문에, 호전되었다는 증거는 그만큼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고 의지하고 있다는 증거의 반증이기도 하니까.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의존하는 환자는 처음이고, 자신 역시 언제나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충실해야 한다고 믿어왔기 때문에,
그에게도 충실하게 대하고 있고, 그런 와중에 자신을 마음 깊이 의존하고 신체적 접촉까지 한 사람은 처음이라 오묘한 기분이 드는 거 뿐이라고 생각을 해요.
다음주 수요일이 되어서 츠카사는 레오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어요. 레오는 역시나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서, 츠카사는 자신이 괜한 걱정을 한 걸까…… 생각을 하는데, 역시나 상담이 끝나갈 때 레오가 츠카사의 손을 쥐어요.
거절할까, 뿌리칠까. 츠카사는 고민을 하다가 우선은 그에게 "무엇을 하는 건가요?" 하고 물어보기로 해요.
마치 어린아이에게 행동의 원인을 묻듯이. 어린아이를 대하듯이 물어오는 츠카사를 향해 레오는 "선생님의 손, 기분 좋은 거 같아서." 라고 말해요. 츠카사는 "하아……?" 하고 알 수가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 레오는 은근슬쩍 깍지를 끼려다가 츠카사가 손을 빼버리는 바람에 손을 더 이상 잡지 못해요.
츠카사는 의도를 알 수 없는 레오의 행동에 조금 당황했고, 분석을 하려고 생각을 하죠. 우선은 의사니까. 환자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찾아야 하니까요. 아무래도 이렇게 계속 자신과 접촉하고 싶어하고 손을 잡아오는 건, 무언가에 대한 결핍이나 공허함때문이 아닐까. 왜 손을 잡는 걸까? 모성에 대한 결핍이 있나, 이 사람 애정에 대한 결핍증상도 심했던가? 대인관계에서 크게 부각되는 문제점이 있던가? 하면서 예전 차트를 살펴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레오는 비어버린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그럼 나 가볼게, 선생." 하고 나가죠. 츠카사는 뒤늦게 문을 열고 "다음주 수요일, 잊지 마세요." 라고 말하고 레오는 대답없이 병원을 나가요. 집으로 돌아가는 레오는 츠카사의 손을 생각해요.
손의 감촉, 자신의 지문 아래서 으깨지던 살갗, 손등, 뼈, 가는 손가락, 하다가 그의 왼손에 끼어있던 반지를 생각해요. 가는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얇은 은반지는 그의 손에 어울리지 않는 이물질같다고 생각하다가, 왼손의 반지, 약지……, 하고 계속 생각을 하는데 머리가 아파져서 생각은 그만두자고 떨쳐내고, 그날은 집에 돌아와 약을 먹고 바로 잠들어요.
레오는 거진 츠카사를 만나는 날 이외에는 제정신으로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약을 먹고 잠을 자요. 잠을 많이 자면 마치 빨리 수요일이 돌아오기라도 하는 듯이.
츠카사는 레오의 말 때문에 고심을 하다가 왠지 모르게 핸드크림을 사서 바르는 버릇이 생겨버리고, 가끔식 일을 하다가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거나, 이따금 팔을 들어올려 형광등불 아래서 올려다보기도 하면서 제 손이 무어라고…… 생각해요.
수요일이 되었어요. 츠카사는 나름대로 레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레오가 수요일에 오지 않아서 결국 다른 환자들을 받고, 환자들을 받으면서도 그가 불시에 등장하는 건 아닐까, 엄청나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데 끝끝내 레오가 오지 않아요.
츠카사가 퇴근을 할 때는 사위가 어두워졌고 부슬비까지 내리고 있어서 시야가 밝지 못했어요. 츠카사는 코트를 여미고 깃을 세워서 뺨에 제멋대로 선을 긋는 빗줄기를 피하고, 우산을 쓰고서 자신의 차가 주차되어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죠. 자동차에 들어가 시동을 걸다가 다시 급하게 차밖으로 뛰쳐나와요. 우산도 챙기지 않은 채 비에 젖어가며 자신의 진료실로 돌아가요.
젖은 손으로 종이를 뒤적거린 탓에 적힌 글씨들이 번져가는 일에도 아랑곳 않고 환자 기록을 뒤져서 레오의 집 주소를 찾아요. 급히 종이에 휘갈겨 쓰고는 다시 서둘러 차로 돌아와 운전을 해서 레오의 집으로 찾아가죠. 너무도 충동적인 행동이었기에 운전을 하면서도 몇 번이고 망설이고 생각해요.
내가 왜 이러지? 무슨 미친 짓이지? 하면서 생각하는데, 한 번도 상담에 빠지지 않은 그였기 때문에 이렇게 아무런 소식도 없이 오지 않았을 땐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르는 거라며 자기에게 합당한 이유를 쥐어줘요.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거의 장댓비수준으로 퍼붓기 시작하고, 레오의 집앞에 도착했을 때는 츠카사는 거진 홀딱 젖어있는 상태였어요. 문을 세차게 두드리면서 레오의 이름을 불러요.
"츠키나가씨, 츠키나가씨!" 하고 문을 쾅쾅 두드리는데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반응도 없으니까 역시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두려움이 엄습해와요. 경찰서든 소방서든 전화를 하기위해 휴대폰을 꺼냈는데 빗물에 젖은 손도 미끄럽고, 서두르는 바람에 손짓이 엇나가서 휴대폰이 빗물 웅덩이에 푹 빠져버려요.
츠카사는 젖어서 질척이는 머리칼을 귀 뒤로 쓸어넘기면서 축축하게 젖어서 차갑고 딱딱한 바닥에 꿇어앉아 휴대폰을 쥐려는데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요. 츠카사는 뒤를 돌아보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레오가 서 있었어요.
어리둥절하달까, 무심하달까, 길가의 행인을 보듯이 내려다보고 있던 레오가 아! 하더니 츠카사의 손을 잡아서 안으로 끌어들여요.
"비 맞은 거야? 선생?"
하고 말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일상적으로 보여서, 너무 평소랑 똑같고 멀쩡한 모습을 보니까 츠카사는 이 한밤중에 여기까지 차를 몰고 달려온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고 이 상황이 웃기기도 해서. 비에 젖은 얼굴을 손바닥으로 훑어 내리면서 하하...하고 웃어요.
“무사하신 거 같으니 전 이만 가볼게요.”
츠카사가 딱딱하게 말하고 돌아서려는데 레오가 갑자기 팔을 잡아당겨서 츠카사는 거의 미끄러질뻔하죠. 레오가 순발력있게 양팔을 붙잡고 등을 받쳐주어서 엉덩방아 찧는 것은 면해요.
레오는 젖었으니 옷이라도 말리고 가라고 이야기하고, 츠카사는 차에 히터로도 충분하다고 하는데 레오는 일단은 제 입장에서 츠카사는 찾아온 손님이니 들어오라고 권유를 하죠. 츠카사 입장에선 사실 레오에게 오늘 진찰을 빼먹은 이유도 들어야했으니까, 알겠다고 수긍해요.
아무튼 츠카사는 거실로 들어서게 되는데 레오의 집이니만큼 어지럽겠죠.
이곳저곳에 악보도 널려있고, 빈 오선지도 내려앉아있고, 츠카사는 정신사나운 그 사람의 성격대로 정신사나운 집이라고 생각하고 대충 소파에 걸터앉아요.
그러는 사이로 레오가 수건이랑 갈아입을 여벌의 옷을 주는데 츠카사는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데 레오가 내 소파가 젖어, 라고 하는 말에 폐를 끼칠 순 없다고 생각해서 갈아입기로 해요. 그런데 처음입는 옷인데도 익숙하고 친숙한 느낌이 들어서 무얼까, 라고 생각하면서 옷이 편한 거겠거니, 하고 생각을 해요.
건조로 맞춘 세탁기에 양복을 넣고 돌리는 사이로 츠카사와 레오는 잠시 말을 할 수 있게되었는데, 레오가 정신 사납게 차라도 줄까? 라면서 물어오는 바람에 츠카사는 그 페이스에 휩쓸리게 되어서 차를 얻어마시게 되죠. 소파에 앉아서 차를 마시다가 문뜩 자기가 여기에 온 이유가 생각이 나죠.
“오늘 왜 오지 않았나요?” 라고 묻는데, 레오는 오히려
“응?” 하고 되물어와요. 츠카사는
“상담에 오시지 않은 이유를 여쭤보고 있어요.” 라고 대답하는데 레오가 “흐음? 수요일?” 하고 말하죠. 츠카사는 그렇다고 대답을 하는데 레오가 정말로 쌩둥맞고 천역덕스럽게
“오늘 내가 가야했어?” 라고 물어요.
츠카사는 “당연하죠! 상담을, 상담을 하셔야,” 라고 말하는데, 레오는 “그치만 오늘은 화요일이야.” 라고 말해서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을 해요.
수요일이 분명했는데……, 츠카사는 혼란을 느끼고 레오는 화요일이 분명하다고 말하고, 츠카사는 이런 느낌을 어디선가 받은 적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다가 머리가 너무 아파서 쓰러져요.
정신을 차려보니까 자기는 이불 속에 누워있고 레오가 “선생 괜찮아?” 하고 물어서 츠카사는 무언가 대답을 하려고 하는데 말이 잘 나오지 않아서 이불 속에서 꾸물꾸물하는데,
“너 감기에 걸려서~……” 라면서 레오가 뭐라고 말하는데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는 않고, 레오의 말이 정신사납기도 하니까 머리를 망치로 두드리는 듯 고통스러워졌어요. 츠카사는 자기도 모르게 “머리 아프니까 그만해요, 레오상.” 하고 말해요.
“레오상.”
하고 말하는데, 정말로 처음 부르는 이름이 분명한데, 왜 이렇게 멋대로 이르을 불러버린건지, 왜 이리 자연스럽게 제 입을 타고 흘러나온 건지, 뭔가 이상하다고 츠카사는 생각하는데
“그래.”
하고 레오는 의아함이란 조금도 내비치지 않고선 대답해요.
츠카사는 아픈 자신과 그런 저를 레오가 돌봐주고 있는 이 풍경이 뭔가 낯익다고 생각하면서 잠이 들어요. 잠에서 깨어났을 땐 레오가 침대 밑에 깔린 카페트 위에서 꾸물거리면서 자고 있고 자기 이마엔 냉각시트가 붙여져 있었죠.
이제 일어나서 이불 위로 주인이 올라오도록 비켜줘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면서, 생각하다가, 바닥에 잠들어있는 레오를 흔들어 깨우면서 “바닥은 추우니 위로 올라가서 주무세요.” 말해요. 레오는 꾸물거리면서 침대로 올라가죠. 츠카사는 너무 오래 신세를 져버렸다, 예정에도 없는 일이 벌어져서 혼란스럽고 서둘러 집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망설이던 차에 엉망진창인 거실이 눈에 들어와요.
이 집에서 신세를 졌으니, 가볍게 정리라도 해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츠카사는 청소를 시작해요. 바닥에 널부러진 악보를 주워서 소파에 앉아 정리해보고, 가녘마다 먼지가 두껍게 뭉쳐있는 피아노도 대충 정리하다가, 피아노 페달 밑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해요.
츠카사는 바닥에 엎드려서 페달 밑에서 반짝이던 그것을 주워요. 그것은 카세트 테이프였어요. 레오의 것이 분명했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기에 자신의 이름이 나란히 쓰여있어서,
이게 무얼까…… 하고 생각해요. 의문이 생겼죠.
그러던 차에 잠에서 깬 레오가 일어나 거실로 나와서 “선생, 이제 괜찮아?” 하고 물어봐요. 츠카사는 자기도 모르게 그 카세트 테이프를 챙겨다가 자기 주머니에 숨기면서 “챙겨주신 덕분에 괜찮아졌습니다. 감사해요.” 하고 웃죠. 간밤엔 너무 신세가 많았다고 말하니 레오가 “나중에 갚아줘~” 하고 웃어요.
“있다가 오후 상담에서 봬요.”
“벌써 가게?”
“저는 출근을 해야하니까요.”
하고 츠카사는 서둘러 레오네 집을 빠져나와요. 집으로 돌아가서 급한대로 씻고 옷을 갈아입고 병원으로 가요. 테이프가 무척이나 신경쓰였지만, 멋대로 틀어봐도 되는 것일까, 그건 대체 뭘까, 하고 생각을 하면서 환자들을 차례차례로 상대해요.
이제 레오의 차례가 되었죠.
“하루만에 두 번째 만남이네~” 하고 레오는 평소랑 다름없는 모습이었죠. 상담을 진행하죠. 약에 대한 이야기와 꿈 이야기라던가, 츠카사는 레오의 말을 들으면서도 머리 한편으로는 테이프의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요. 잠시 멍해져버리는데, 츠카사가 딴 생각을 하는 거 같으니까 레오가 “선생~? 선생님~?” 하고 그의 눈앞에 손을 흔들어보아요.
츠카사가 영 정신도 못차리고 반응도 없으니까 레오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요. 그 순간 정신이 번뜩 들은 츠카사가 놀라서 무슨 짓이냐고, 소리치고, 레오는 선생이 내 말에 대꾸가 없어서 그랬다고 해서 츠카사는 서둘러 죄송하다고 사과를 해요.
“아무래도 아픈 게 덜 나은 거 같으니까~ 오늘 상담은 여기서 그만둘까?”
레오는 자기에게 할당된 남은 시간에 쉬라고 말하면서 가버려요. 그러고보니 오늘은 손도 잡고 가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츠카사는 결국 반차를 쓰기로 결심하고 집으로 돌아가요.
집으로 돌아와서 제일 먼저 테이프를 테이블에 올려두고선 바라보아요. 이게 무얼까, 멋대로 들어도 되는 걸까, 요즘 같은 시대에 카세트 테이프라니, 그런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다가 어쩌면 레오가 자신과의 상담일지나 관련 내용을 녹음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자기에게 세워주고서 카세트 테이프를 틀기로 마음을 먹어요.
다락방에 올라가서 먼지 쌓인 카세트를 찾고, 조용히 홀로 듣기 위해 이어폰도 꽂았죠. 이제 테이프의 재생 버튼만 누르면 되었죠. 츠카사는 쉼호흡을 하고선 재생 버튼을 눌러요.
처음에는 지직거리는 소리만 나서 귀가 무척이나 아팠죠. 귀가 따갑다고 생각하면서 이게 무얼까, 망가진 건 아닐까, 역시 별 거 아닌가, 하고 정지 버튼을 누르려고 하는 그 순간 레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해요.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는 거 같았죠. 왜냐면 묻는 목소리가 있었기에…… 츠카사는 귀기울여 그 대화를 듣기 시작합니다.
시작은 단조로워요. “당신의 이름은 뭐죠?” 하는 자기소개같은 거라서. 역시 그냥 단순한 상담일지인가……, 했는데 묻는 사람은 자기가 아니잖아요. 자신의 목소리를 구분하지 못할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여기에 왜 제 이름이 있는 걸까, 전의 의사가 제게 전달해주라고 이름을 적어두었던 걸까. 그가 전해주지 않을걸까……하고 생각을 하는데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는 뭔가요?” 하고 묻는 질문에 대답하는 레오의 목소리에서 낯익은 이름이 들려요.
“스오우 츠카사에 관한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 라고,
의사는 이 문제는 신중히 결정해야 하는 일이라고 재차 경고하듯 말해요.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처럼 자꾸만 반복되는 그 말을 레오는 가차없이 끊어내면서 “이미 지우겠다고 결정했으니까.“라고 말해요. 레오는 혼자서만 이렇게 기억하고 있으니 괴롭다고 그냥 차라리 편하게 되고 싶다고 말을 해요.
의사가 기억을 지우는 건 할 수 있지만, 잔여물처럼 남는 감정에 대해선 그 어떠한 책임을지지 않는다고 말해요. 차후에 어떤 부작용에 대해서도 이곳은 책임을 질 의무도 법적 책임도 없다고 재차 강조하고 레오는 아무튼 됐으니 기억을 지워달라고 말해요(그래서 레오가 기억을 지운 후에 남은 감정들에 대해서 알 수 없는 혼란을 겪고 불안해하면서 상담을 다니기 시작한 것이고...
레오는 단 한순간이라도 츠카사에 대한 생각을 안하고 편히 지내고 싶다고 말을 해요.
츠카사는 들으면서 “이게 뭐지? 그 사람은 나랑 상담을 하면서 나에 대해서 기억을 지우고 싶었나?” 하는데, 자기 생각을 해서 곤란하거나 괴로울 이유가 그에게는 없잖아요. 그래서 우선은 더 들어보자고 다짐을 하고 이야기를 듣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이상하게 데자뷰같다고 느껴요.
“뭐지, 이게 다 뭐지……”, 싶은데 어디선가 낯익게 느껴졌던 목소리가 레오뿐만이 아니라 그 상담을 해주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하다가. 레오가 하는 말들에 츠카사는 자꾸 자기 기억이 겹치는 게 느껴져요.
이건 회상도 기억도 아닌 거 같은데 어렴풋하게 두통하고 함께 무언가 떠오르는 거 같아서 테이프를 끊어버리는데도 머릿속에선 비슷한 목소리가 자꾸 재생되고 뇌까리는 듯 한 영문모를 자기 목소리까지 반복되어서 자꾸 생각이 반복되니까 끊을 수가 없어서 바닥에 웅크려요. 제 몸을 감싸듯. 불연 듯 생각이 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자기가 왜 그토록 그의 이름에서 친밀감을 느꼈는지, 아팠던 자기가 왜 그를 보고 레오상이라고 불렀는지라던가,
그와 손이 겹쳤을 때 왜 익숙하다고 생각했는지가
자기가 먼저 기억을 지워주는 병원에 가서 기억을 지워버렸고, 레오를 지워버렸어요.
츠카사가 레오를 잊어버려서
레오도 츠카사를 지우러 간 거 뿐이죠. 자신에 대한 기억을 없애러 간 거라고 생각을 하니 그렇다면 어딘가에 자신의 테이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테이프를 찾기 시작해요.
테이프를 찾기 시작해요. 자기라면 어디에 숨겨두었을까. 테이프를 가지고 와서 어딘가에 버려버렸을 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을 하지만, 아마 버리진 못했을 거에요. 테이프를 받아들고 왔을 땐 기억이 아직 지워지기 전이니까. 테이프로 녹음을 하며 상담을 진행하는 동안 심경의 변화가 있을수도 있던 터라 녹음을 하고 수술 날짜를 정하는 절차를 밟았던 기억이 나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테이프를 둔 장소가 생각이 나지 않아 츠카사는 온 집안을 들쑤셔요.
책꽂이를 뒤엎고 서랍을 뒤지고 온갖 곳을 다 뒤적거리다가 등잔 밑이 어둡다고, 제 침대 옆 테이블에, 바로 그 자리에, 놓여진 액자 뒤에, 부모님과 약혼녀와 찍어둔 사진, 그들 뒤에 테이프가 숨겨져 있었어요.
들을까 말까, 고민을 하죠. 왜냐면 지금 기억은 나지만, 조각이 사라진 퍼즐이고, 그런 와중에도 고통스러운데…… 이 테이프를 듣는다면 조각이 다 맞춰질테고 자기는 그걸 견딜 수 있을까, 고민을 해요.
결국 뜬눈으로 고민하며 밤을 지새죠. 병원엔 출근하지 못할 거 같다고 말을 하고서 결심한 듯이 테이프를 틀어요. 레오의 테이프때와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자신의 목소리가 들려오죠.
츠키나가 레오에 대한 기억을 지우려고 왔다고 말하면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지우고 싶냐고 묻는 말에 애초부터 몰랐던 사람처럼,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워달라고 말을 하고 상대는 그래도 괜찮겠냐고 물어요. 츠카사는 후회하지 않을 결심이 섰으니 여기에 왔다고 말을 하죠.
자기가 츠키나가 레오를 알게 된 시점부터 오늘까지 지워주면 된다고 말하는데 기억을 지우려는 경위에 대해서는 함구해요. 거듭 물어도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을 해서 츠카사는 테이프를 들어도, 들었는데도 자기가 왜 츠키나가 레오에 대해서 기억을 지우려고 했는지 의문이 생기고, 어떤 사이였는지 갈피가 잡히지 않아요.
기관까지 찾아가 기억을 지워달라고 말할 정도면 친밀한 사이인게 분명한데, 기억은 없으니까, 무어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고 이름붙일 수도 없었죠. 이름표가 사라진 관계였어요. 레오의 테이프에선 레오가 자기를 두고 연인이라고 했는데 그게 사실인가, 싶다가도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츠카사는 자기가 레오를 알았다고 하는 시점부터 자기 기록을 찾아보기 시작해요.
다시 방을 뒤지고, 여기저기를 들쑤시는데도 그 어디에서도 레오에 대한 흔적은 하나도 나오지 않아요. 답답한 마음을 풀 수가 없어요. 다행스럽게도 레오랑 만났다고 주장하던 그 시절의 앨범이 남아있어서 그것과 테이프를 챙겨들고 레오에게 찾아가요.
레오는 병원에 있어야 할 의사선생님이 상담일도 아닌 요일에 자기 집에 찾아온 것에 대해서 의문을 표하는데, 츠카사는 레오를 보자마자 대뜸 이 시기에 찍은 사진이 있냐고 물어봐요. 레오는
“나는 사진 찍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라고 말을 하죠.
“그래도 한 장 정도는 있을 게 아니에요.”
“갑자기 사진은 왜? 상담에 필요해?”
츠카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요.
“선생이 그렇다면 찾아는 볼게. 그런데 장담은 못하는데……”라는 레오에 말에 츠카사는 다급하게 지금 당장 필요하다고 말하죠. 레오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이 상황이 재미있기도 해요.
평소에는 매일 만들어놓은 다정한 얼굴로 평정을 가장하던 사람이 흐트러진 모습으로 집에 와서 어린아이 땡깡부리듯이 자기한테 조르고 억지부리는 게 재미있어서 앨범을 찾아보기는 해요.
정말로 레오는 사진 찍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인지 제가 찍힌 사진은 몇 장 없었죠. 많아봐야 네다섯 장이나 될까, 그나마 얼굴이 제대로 나온 사진들 말이죠. 츠카사는 레오의 사진들을 늘어놓고서 자기의 사진과 비슷한 게 없나 찾아요.
그런데 우습게도 4,5장이 사진 모두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각도로, 똑같이 현상되어있는데 레오에겐 자기가 없고 자기에겐 레오가 없는 사진이 있어서, 레오는
“뭐야, 선생님. 신기하네~ 우연인가?” 하고 말하는데 츠카사는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혼란스러워서 레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윽박지르죠. 갑자기 소리를 지르니까 레오는 그렇게 소리 지르지 말라고 이야기해요. 큰 목소리로. 마치 두 사람은 싸움을 시작하는 것만 같죠.
갑자기 다짜고짜 들어와서 영문 모를 소리를 하면 사람이 당황스럽다고, 그러면서 싸우다가 츠카사가 “결국엔 매번 당신은 이 모양이죠!” 하고 말하는데,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 다 말을 잊지 못해요.
츠카사는 실례가 많았다고 말하곤 황급히 집을 떠나요. 도망치듯이. 레오 역시 붙잡을 이유가 없었기에 그러려니 하며 그냥 보내버리죠.
혼란스러워요. 츠카사는. 역시 과거에 자기가 그 사람이랑 연인이 맞았다면, 분명 무슨 일이 있었고, 어제와 같이 다툼 끝에 헤어져서 기억을 지운 게 맞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단순하게 생각하자고 마음을 먹어요. 흔한 연인이었으니까, 흔한게 빈번하게 빚어지는 갈등과 싸움 끝에 우리는 그렇게 헤어지고 만 거라고. 여타 다를바 없는 모든 연인들처럼. 평범하고 평범하게.
그는 아마 모르는 거 같고 아직 눈치채지 못한 거 같으니 다시 모르는 사람으로 돌아가서, 다시 이전처럼 환자나 의사 관계로 처음만난 사람으로 지내다가 그가 말끔하게 치료를 끝내면 다시는 만날 일이 없는, 인생을 단 몇분이래도 나누고 겹칠 일이 없을 남남으로 돌아가자고 생각을 해요.
수요일이 되었어요. 츠카사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선 레오를 기다려요. 하지만 레오는 오지 않아요. 츠카사는 자신이 또 요일을 헷갈린 걸까 생각하고 간호사에게 물어봐도 수요일이라는 대답만 돌아왔죠. 츠카사는 고민을 하다가 결국 레오의 집으로 방문을 해요. 어찌되었던 자신이 맡고 있는 환자였으니까.
익숙한 길이었죠. 두 번째 방문이라서가 아니라 이전에 수없이 가봤던 집이니까. 문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는데 레오가 나와요. 예전처럼 무심한 듯 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더니
“어서와”, 하고 말해요. 츠카사는 왜 병원에 오지 않았냐고 물으려고 하는데 레오가 “스오” 라고 말해서 입술을 깨물어요. 잠시 머뭇거리다 물었죠.
“다 기억해요?”
라고 물으니까 레오는 아무런 말없이 문을 열어주고 몸을 비껴서요. 츠카사가 들어올 수 있도록.
우선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들어가 본 거실에는 자신이 레오를 찾아왔던 그날 미처 놓고선 챙겨가지 못했던 사진과 레오가 츠카사와 만났다고 주장하는 기간에 있던 물건들이 나란히 놓여있었죠. 츠카사는 떨면서
“다 기억난 거예요?” 하고 묻고,
“다 기억난 건 아니야.” 라고 말해요.
츠카사는 그렇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고, 지금 이 자리에서 자기가 이 짐을 챙겨서 나가면 없는 일이 되는 거라고 말해요. 자기가 불편하면 얼마든지 의사도 병원도 많으니까 다른 곳으로 가면 된다고 말해요. 자신이 좋은 의사를 소개시켜주겠다고, 제가 아는 좋은 선배들이 많으니까.
레오가 대답이 없어서 승낙이라 받아들인 츠카사가 서둘러 자기 짐을 챙기려고 하는데 레오가 츠카사의 손목을 붙들어요.
“이건 네 기억이기도 하지만, 내 기억이기도 해, 네 멋대로 가져가거나 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라고 말해요.
츠카사는 그럼 도대체 어쩌자고 이러는 거냐고 묻고, 레오는 이유가 알고 싶다고 말을 해요. 츠카사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묻죠. 레오는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냐 말해요.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잖아. 그래서 너도 날 찾아왔던 거 아니야?” 라고 묻죠. 레오가 알고 싶다고 하는 이유가 우리가 왜 헤어졌는지, 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있다는 걸 츠카사는 눈치를 채요.
뭘 어쩌자는 걸까……이런다고 달라지는 게 뭐가 있을까, 기억을 찾아서 나아지는 게 뭐가 있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츠카사는 알겠다면서 물건들을 맞추고 테이프를 맞춰요.
두 사람은 시작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부터 서로의 테이프를 번갈아 들으면서 사진과 츠카사의 일기와, 레오의 악보들을 맞춰가요.
이건 정말 비정상적인 일이라고, 츠카사는 생각하면서도 옆에서 진지하게 맞추는 레오를 보면서 하나 둘 맞춰나가다보니
테이프는 어느새 끝이 나 있고
자기들의 기록도 끝이 나있고,
밤도 끝이 나서 아침이 와요.
밤새도록 서로 머리를 썼으니까 두 사람 다 피로했죠. “다 됐다.” 하고 레오가 먼저 바닥에 눕더니 그대로 잠들어버려서 츠카사는 그런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다 익숙하게 모포를 찾아와요. 레오에게 덮어주고선 자기도 모르게 까마득 잠들어버렸죠. 다시 일어났을 땐 푸른 저녁이고, 레오는 여전히 자고 있고, 츠카사는 자기 안에서 무언가가 바뀌었다고 생각을 해요.
익숙한 기시감 속에서 츠카사는 잠들어있는 레오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레오가 깨지 않게 조심조심해선 짐을 챙겨들곤 밖으로 나가요.
급하게 병원도 그만두고, 집도 이사를 가고, 잠시 요양하고 싶다는 핑계를 대면서 봉사를 한다던가, 그런 경험을 쌓고 싶다고 말하면서 스오우 가의 별장처럼 쓰이는 낡은 가옥에 홀로 머무르면서 이따금 동네 보건소의 일을 도와주러 간다던가, 그런 일을 반복하고, 약혼이라고 부르기도 뭣하던 여자와의 관계도 다 끝내고 그 집에서 여름을 보내요. 홀로. 서서히.
바람도 제법 서늘해지고 자다보면 한기가 느껴져서 츠카사는 그날 자다 깨선 자기가 마루의 문을 미처 닫지 않았단 사실을 깨달아요. 문을 열어두어서 추웠구나, 내일부턴 이불을 바꾸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마루로 나가는데 머리 위가 환해서 올려다보니 달이 있고,
달이 너무 밝아서
달이 너무 밝다고 생각해서
한참을 올려다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서 우는데
인기척이 없어야 할 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져서 길고양이나 강아지가 쉴 곳을 찾아 온 것일까, 긴장하고 바라보는데 거기엔 레오가 있어요. 츠카사는 자기가 이젠 헛것까지 보나 하고 눈을 부비는데 레오가 점점 커져요. 제게로 다가오고 있었죠. 마주보고 서 있으니까 그제서야 실물인가 싶어서, 츠카사가 “레오상…” 하고 부르는데 레오가 츠카사의 손목을 잡아서 비틀어요.
츠카사가 아프다고 소리치려는데 레오가 그대로 츠카사를 잔디밭에 눕혀버려요. 잔디밭에 나뒹굴죠. 레오가 너무 세게 안고 있어서 츠카사는 버둥거려보는데도 손이, 자신을 껴안은 팔이 꿈쩍도 하지 않아요. 츠카사는 아프다고 말을 하려는데,
“두 번이나 먼저 날 버리고 갔어!”
라고 레오가 소리쳐요. 그 소리에 츠카사는 레오의 손에서 벗어나기를 그만두어요. 레오가 두번이나…… 두번씩이나! 하면서 소리를 자꾸 쳐서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레오가 울고 있어서 츠카사는 그냥 자기 손바닥으로 조용히 레오 얼굴을 덮어주고 품에 안겨 있고,
이전의 츠카사라면 잘못된 일은 얼마든지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말했을 성격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레오와 자신의 관계만큼은 다시 바로잡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차라리 다시 생각나는 일이 없도록, 자기보다 늦게 눈치 챈 그라면 자각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먼저 나왔던 건데. 그가 자신을 기억속에 묻은 채로 잘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나왔는데,
레오는 두번씩이나 츠카사가 자길 먼저 버렸다고 생각해서 화가 나고, 사라지는 건 자기 특기인데, 마치 복수라도 하듯이 자기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츠카사가 밉고 미워서 쫓아 왔는데 막상 보니까 화가 나기보다는 울컥한 마음도 들고 배신당했단 슬픔이라던가, 매듭짓지 못했던 사랑이라던가 그런게 생각이 나버려서 츠카사 앞에서 울어버리기나 하고 꼴사납다고 생각하죠.
레오는 다시 시작하자는 말같은 건 못하겠다고 생각해요. 그건 츠카사도 마찬가지일테죠.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기억을 지운다거나 눈 앞에서 사라지지 말아달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는데,
츠카사가 너무 초연한 거 같아서 혼자만 애달프고 그리웠나 싶어서 뚱한 채로 츠카사네 집에 머무르게 되죠. 츠카사는 레오가 오기 전이랑 똑같이 생활을 유지해요.
변한 건 거의 없었어요. 바뀐 게 있다면 식기구가 하나 더 늘고, 일인분이던 밥이 이인분으로 늘고, 가구가 적어 적막하다 못해 스산하던 방바닥에 가끔 레오가 그리다 만 악보가 펄럭이고 있다던가, 그 탓에 방 곳곳에 커다란 이파리를 가진 꽃이 핀 것 같다고 생각을 한다던가,
가을꽃이 화단에 피었다던가, 가을꽃이 저물었다던가, 낙엽이 바스러졌다던가, 읽던 책의 페이지가 끝이 나버렸다던가, 하는 작은 차이밖에 없었죠. 그 변화들 모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구는 츠카사가 있었어요.
레오는 쫓아내지도 않고, 그렇다고 친밀하게 대하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있는 츠카사가 밉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해요. 아무 말도 못하고 둘이서 나누는 말은 정말 그냥 일상적인 거 밖에 없어서, 오늘 비온대, 라던가 뉴스 볼래? 라던가, 시내에 나갈건데 뭐 사다드릴까요? 같은 말뿐이라서
서로 마음을 이야기할 시간같은 것도 없어서 레오가 끙끙거리는 새로 겨울이 돼요.
“코타츠를 하나 두는 게 좋겠죠?” 하는 말에
“응”, 레오가 대답하면,
“겨울 옷이 필요할 거에요.” 라고 츠카사가 말하죠.
“아아, 그렇겠지.” 라고 레오는 대답해요.
며칠 뒤 코타츠와 함께 꽤 커다란 박스가 집으로 도착해요. 커다란 박스에 레오도 호기가 생겨서 주변을 알짱거리는데 츠카사는 마침 잘 되었다고 말하면서 레오에게 옷을 건네요.
“이게 뭐야?” 레오가 묻자,
“겨울옷이요.” 츠카사가 말해요.
“내꺼?” 하고 물으니
“그럼 달리 누가 있겠어요?” 하고 말해요.
묵묵히 옷가지를 꺼내서 정리하는 츠카사 눈치만 보다가 레오는 조심스럽고, 그렇지만 아주 약간의 장난기를-웃음이 나지 않았지만, 실로 떨려서 손끝이 차갑게 식어갔지만, 농담을 가장해서 “저기~ 나 안 쫓아내?” 하고 물어요.
잠시 침묵하던 츠카사는
“그만 나가고 싶어요?” 말해요. 레오가 끄응, 하면서 쫓아내면 어떡하지……생각해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로
“어차피 안 가실 걸 아니까. 대답은 됐어요.”
하고 츠카사가 대답해요. 묵묵히 옷을 개키고 있는 그 뒷모습을 레오는 지그시 바라보다가 지금이라면 왠지 껴안아도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다가
“스오. 껴안아도 돼?” 하고 물어봐요.
“싫다고 해도…… 하실 거잖아요.” 츠카사는 조용히 말해요. 레오는 기다렸다는 듯이 츠카사를 껴안아요.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고, 츠카사의 집에는 레오의 짐이 생기고 두 사람 다 조심히 살얼음판을 걷듯이 서로를 대해요. 서로 말할 것이 있는데, 공유하고 있는 게 있는데 그걸 말하면 지금의 평화가 사라질 거 같아서……
어느새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었죠. 츠카사는 화단 정리를 하는 게 좋겠다고 말해요. 레오는 “그래! 도와줄게!” 라고 말하죠.
“낙엽을 쓸어서 좀 태우는 게 좋겠어요.” 하는 말에 레오는 그래, 그래, 하면서 낙엽을 산 곳으로 쓸어 모으죠. 츠카사는 익숙한 듯 불을 붙여서 타들어가는 낙엽들을 보고 있어요. 늙은 가을이 시든 가을이 그곳에서 발광하고 있었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츠카사는
“하나 더 태울 게 있어요.”라고 말해서 레오는
“뭔데?” 하고 물었는데,
츠카사가 주머니에서 자기 테이프를 꺼내서 집어 던져버려요. 레오가 놀라서 바라보는데 츠카사는 그대로 타고 있는 불꽃만을 바라본 채로 “이젠 이유를 말해달래도 말해줄 수 없어요. 몰라요.” 하고 말하고,
“그러니 이제 떠날 건가요?” 하고 물어보죠. 눈은 마주치지 않고 있어요. 레오는
“글세. 떠날 이유가 없지 않나?” 하고 타고 있는 테이프로 시선을 돌리죠.
“어차피 사라졌으니까 처음부터 없던 일 아니야~?” 하고 레오는 웃으면서 말하죠. 츠카사는 대답없이 사그라들어가는 불 아래서 눅진하게 녹아내리는 제 기억을 바라보고 있어요.
다음날 아침 일어났는데 곁엔 레오가 없었어요. 이불도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죠. 정돈되고 깨끗해진 방안에서 결국 간 거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츠카사는 이불에 얼굴을 묻어요. 홀로 먹는 아침밥이라면 시간은 얼마든지 늦출 수 있으니까.
츠카사는 이불에 한참이나 얼굴을 파묻고 있다 마루로 나와요. 마루로 나오는데 레오의 목소리가 들려요.
“일어났어?” 하고 말하며 화단에서 자길 바라보고 있었죠.
“떠난 게 아니셨나요?” 하고 츠카사가 묻자
“가지러 갈 게 있어서 밤샘 운전하고 왔지, 피곤해~” 레오가 말해요.
“가지러 갈 거?” 하고 츠카사가 궁금해하자 레오가 자기 테이프를 꺼내보여요.
전날 태웠던 낙엽들은 다시 불을 붙자 기다렸다는 듯이 재빠르게 타오르더니 작은 화마가 레오의 기억을 녹여먹기 시작했어요.
츠카사의 앞에서 레오는 자신의 테이프를 태우면서 물어봐요.
“또 나 버릴거야?” 하고.
츠카사는 그런 레오를 가만히 응시하다 “레오상 하는 거 봐서요.” 하고 말하고 웃어줘요.
그래서 둘이서 행복하게 잘 사는 그런 해피엔딩을……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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