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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스타

[레오츠카] 어느 연인의 일상

엘리스.aliceeli 2017. 7. 4. 22:16

어느 연인의 일상

- 지극히 사소해서 평범한,

츠키나가 레오 X 스오우 츠카사

 * 아마도 졸업 이후의 평범한 이야기,



*



어스푸름한 빛살이 벽지에 자그맣게 하늘을 띄어놓았다. 마치 작은 우물 속에서 내다보는 하늘처럼 푸른 빛살은 넓지만 작고 좁다. 사람이 뒤척이는 소리가 난다. 이불이 슥슥대어 솜들끼리 엉기는 소리가 난다. 솜들을 감싼 시트는 쾌적한 온도를 주는 만큼 쉽사리 주변에 녹아들지 않는 덕에 언제나 뻣뻣해서 서걱거리는 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렇지만 그 말이 몸에 부드럽게 와 닿는 촉감이 없다는 말은 아니었다. 분명히 이불은 부드럽게 그네들을 감싸주지만, 소리만큼은 귀에 불편하게 다가왔다. 서걱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린다. 그가 뒤척이고 있는지 몰랐다.


서걱거리는 소리들의 간극이 좁아졌다. 점차로 서걱, 서걱, 마치 느린 소가 입안에 넣은 여물을 되새김질하는 듯이 천천히 그리고 규칙적으로 서걱거리던 소리가 조금 큰 모양으로 바뀌었다. 써걱거린다. 소리가. 그와 함께 천천히 풍성하게 부푼 이불 사이로 부스스한 머릿결로 간밤의 평온함을 역력히 내보이는 그이가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거리에 세워진 풍선인형에 숨을 불어넣어 움직임을 부여하듯 그의 몸이 작게 위아래로 들썩이는 사이로 몸 안에 숨이 찬 그가 서서히 상체를 폈다. 피로에 젖은 눈두덩이 보였다. 여즉 눈은 감고 있다. 방은 어둡고 들어오는 빛이라곤 커튼에 뚫린 작은 구멍을 통해서 들어온 빛살이 전부였다.


일어나자마자 그가 제일 먼저 한 행동이라면 제 옆자리를 살펴보는 것, 그리고 비어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서 다시 침대에 드러눕는 일, 천장을 바라보며 일자로 눕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손을 펼쳐서 비어버린 제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두어 번 쓸어내린다. 온기따윈 자취를 감춰버려 제법 서늘했다. 방안엔 에어컨이 가동중이었다. 체온이 금세 식어버린다는 말이기도 하였다.


그는 천장을 바라보다 다시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잠기운이 역력한 낯이다. 손등으로 눈두덩을 슥슥 비비고는 침대에서 몸을 빼낸다. 방을 빠져나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동안 그이의 발에 몇 잡동사니가 채이며 둔탁하거나 가볍게 팔랑이는 소리를 내주었는데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아보였다. 마치 가구나 화분 따위가 마땅히 놓여있어야 할 장소에 놓여있어서 조금의 이상함이나 위화감은 감지하지 않은 채 넘겨버리는 객식구같이 발에 채인 온갖 물질들에 대해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고 있었다.


방만큼이나 거실도 어두웠다. 늦은 시각이라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원래부터 이 집은 그러한 것이다. 어두운 와중에 또 발에 밟히는 모든 사물들을 무감각하고 무덤덤히 넘기며 그는 거실을 가로지른다. 이 방에는 작은 하늘도 만들어져 있지 않았다. 말하자면 침실-그가 방금 전까지 몸을 파묻고 있던 시트가 있던 방이 바로 침실이다.-과 다르게 거실의 커튼엔 흠이라곤 없었다. 사방이 어둡고 깜깜해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긴다. 바른 정사각형 모양 거실의 맨 오른편, 그러니까 베란다를 등지고 면벽수련 하듯 앉아있게 되는 의자와 한 쌍인 책상이 그곳에 있는데, 거기엔 한 남자가 앉아있다.


어두운 와중에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눈이 침침하지도 않은지 그는 책상 앞에 앉아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고 있다. 뒤에서 보면 그가 무슨 글자를 쓰고 있는지 어떠한 형태로 잉크 혹은 흑연들을 어그러트리고 있는지 보이지 않아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팔꿈치의 모습만으로도 그가 무언가를 이행하고 있구나,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이는 이미 그의 쉬지 않는 팔꿈치와 단단한 등과 고개를 숙인 탓에 드러난 목덜미와 간밤부터 풀어헤쳐진 머리칼이 갈라지며 드러내는 단단한 목덜미, 그 목덜미를 바라본다. 강직한 선. 그는 아마 쉽사리 고개를 들지 않을 것이다. 제가 이름을 불러도 그는 듣지 못할 게 분명했기에 그이는 다시 침실로 돌아가 몸을 누일까 하다 갈증을 느낀다. 냉장고로 향한다.


그 찰나에 그의 주변이 환해졌다 다시 삽시간에 어둠에 젖어버리고 말았다. 달칵 하고 문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사그라드는 일시적인 빛 때문일까, 냉장고 문을 열기 전보다 거실은 더욱이 어두워보였다. 눈앞이 시꺼멨다. 마치 맹인이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맹인이라면, 애초에 시각세포가 없기에 검다라는 이 감각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저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지금의 저처럼 눈앞의 모든 사물이 검게 보인다고 말하진 않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감각은 있을 터, 한 치 눈앞도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일에 대해서 묻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물을 마신다. 냉장고에서 꺼낸 물은 몹시도 차가웠고 시원했다. 정해진 길을 따라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물의 서늘함이 가슴까지 퍼지고 있었다.


물을 한두 모금 마시고 나자 눈앞이 제법 환해졌다. 밝아졌다고 말해보아야 이 어두운 와중에 몇몇 덩어리진 어둠들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지만, 미술시간에 배운 암도에 따른 검은색들을 구별하듯이 방안의 사물들은 그렇게 구분이 되었다. 미약하게나마 주머니에 꾸겨놓았던 종자돈처럼 제 몸 어딘가에 숨겨두었을 빛을 사방이 어두워진 사이에 내놓아 비싼 값을 치르는 것이다. 어두운 와중에 한줄기 빛이란 구원과도 같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스오우 츠카사는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이 몇 시인지 며칠인지 감이 잡히지 않고 있었다. 아마 하룻밤밖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심각하다면 삼일 째가 되는 날일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제가 제법 깊은 잠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그 사이 그는 몇 번인가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 팔꿈치를 움직였고 그러다 외로워지면 제 곁에 와 몸을 누였다가 다시 떠나가고, 다가왔다 떠나가고, 품에 안았다가 떠나가고, 그 짓을 몇 번이고 반복했으리란 사실이었다. 그는 다시 한 번 물을 마신다. 걸음을 옮겨 거실 한 중앙에 위치한다. 누군가 마치 준비라도 해놓은 듯 그곳엔 여분의 시트가 앉거나 몸을 파묻기 좋게 뭉쳐져 있었다. 시트가 하얗기 때문에 부풀어 오른 이불은 뭉게구름 같이만 보였다. 그대로 앉는가 싶던 그는 물병을 자리에 내려놓은 채 다시 거실을 가로지른다. 바시락거린다거나 부스럭거린다거나 하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지금의 그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었다.


이곳도 사람이 사는 집이었기 때문에 암막커튼이 쳐져 어둡다는 것 외엔 세간이 존재했다. 몇 번이나 틀어봤을까, 리모컨의 위치조차 이제는 알 수 없어 일일이 다가가 전원을 켜야하는 텔레비전이라든가 그 밑에 손톱깎이나 굴러다니는 잡스런 물건들을 처박아놓은 서랍이라던가, 그리고 이제는 유물이 되어버린 비디오 테이프 기계를 넣기 위해 마련된 장식장과도 같은 그 유리문 너머엔 작고 조그만 은하계가 있다. 조심스레 유리문을 열어 작은 은하를 꺼낸다.


벽 쪽에 기대어 콘센트에 코드를 꼽는다. 오랫동안 건드리지 않아 망가졌으면 어쩌나 조마조마한 마음과 다르게 기계는 매끄럽게 작동해주었다. 작은 발광체가 하늘로 퍼진다. 불꽃놀이처럼. 불꽃이 터지며 가장 장렬하고 화려한 순간을 그대로 정지시켜놓은 듯이 검은 거실에 반짝이는 이파리들이 날린다. 개중에 몇몇은 아직 봉오리로 뭉쳐있어 거대하고 빛이 거세다. 움직임은 역동적으로 빛나고 거대한 잔상을 남기며 눈앞을 몇 번이고 빙빙 돌며 스쳐지나간다. 별들은 고요하고 잠잠하다.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발자국 소리 한 번 빛내지 않고 남겨두지 않고 제 몸에 단단히 붙여내며 걸음을 옮긴다. 별가루 하나 떨어지지 않아 방은 여전히 어둑어둑하고 그는 책상에 앉아있다. 스오우 츠카사는 작게 하품을 하다 거실 중앙에 자리한 이불로 기어들어간다. 몸을 파묻기가 좋았다. 안락했다. 그는 눈을 감는다.


눈을 뜬다. 어느새 거실은 환했다. 암막 커튼이 반 정도는 젖혀져 있어 유리문을 통해 방문한 햇살이 번뜩거리는 빛을 사방에 조심히 퍼트리고 있었다. 거실이 환하다. 제가 틀어놓은 플라네타륨은 아직도 작동 중이었다. 햇빛 아래서 불투명하기 그지없는 별들을 올려다보며 스오우 츠카사는 작게 몸을 비틀었다. 옆자리서 작은 신음이 들려왔다. 숨이 잔뜩 배어들어있었다. 그가 곁에 누워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자신을 껴안은 채 누워있었다. 제 머리를 가슴으로 끌어당겨 품은 채로 날개 아래에 어린 새끼를 숨겨 비를 피하게 만드는 어미 새처럼 자신을 아기새 보듬듯이 따뜻하게 품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하품이 나온다. 하품이 나왔다. 하품을 하는 소리에 그가 눈을 떴다. 자신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며칠만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게 된 것일까. 스오우 츠카사는 다시 하품을 했다. 졸음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나 잤는데도 불구하고.


일은 다 끝났어요?”

, 열심히 했어. 칭찬해줘.”

, 그렇군요. 레오상, 힘냈군요. 잘했어요.”


레오라고 불리운 그이는 츠카사의 목덜미에 고개를 비비고 이마를 문지르고 그의 뺨에 제 뺨을 비벼가며 체온을 나눈다. 그 어리광 사이에 간간이 잇질을 끼어넣어 스오우 츠카사는 서늘하고 뭉뚝한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몸을 떨었다. 그의 이는 날카롭다. 몇 번을 깨물려도 쉽사리 적응되지 않는다. 저는 핥는다고 줄어드는 크림이나 조각나는 젤리가 아니였으니.


어떤 노래였어요?”

물으면 그는 대답을 준비할 시간 따위는 필요 없단 듯 즉답으로,

스오가 부르면 좋을 곡.”


이라고 대답해온다. 천진난만하고 솔직한 답이라고 하면 좋을지, 그도 아니면 기계적이나 습관적으로 그의 혀에 배인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뱀이 버릇처럼 혀를 날름거리듯이 그도 이 말을 혀끝으로 내뱉는 일이 낼름거림처럼 익숙해진 건 아닐까.


매번 그렇게 말하니 듣지 않을 거예요.”


정말인데.”


이 이상 더 좋은 말을 어떻게 찾아내면 좋은 것일까,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스오우 츠카사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응시만으로 끝나는 것일까, 생각하기 무섭게 콧등에 입을 가볍게 맞춰온다. 눈꺼풀 위에 입술을 붙인다. 입술이 닿았다 떨어질 때마다 속눈썹들이 파르르 떨렸다.

빛이 환했다. 거실이 환해서 이제야 잡동사니 따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자신들이 몸을 누인 둥지 외의 모든 장소가 더러웠다. 타이밍 좋게 허기진 배가 소리를 내었다. 생각해보니 물 말고 먹은 것 없이 자신은 며칠간 잠만 잤고, 그이는 책상 앞에만 앉아있었다.


배고파요.”

, 그렇네. 우리 밥 먹는 걸 까먹고 있었어!”

.”

맛있는 거 먹으러 나갈까?”

그전에 목욕부터 하죠. 자태가 형편없어요.”


말한다. 그에 레오는 허물을 벗듯 천천히 머리부터 몸통, 다리를 이불 밖으로 끄집어낸다. 그가 밍기적거리며 눈치를 보며 욕실에 들어서기를 주저하고 있을 때-아직은 좀 더 이불 속에서 뒹굴 거리고 싶다는 암묵적인 의사를 표하고 있었지만, 스오우 츠카사는 그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그저 밖으로 빠져나간 그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작은 허물을 신기하게 들여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아마도 그들은 차례차례로 욕실을 들어갔다 나올 것이다. 그이가 욕실에 들어가 있는 동안 스오우 츠카사는 플라네타륨의 전원을 끄고 다시 유리문 너머에 집어넣고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이불을 가지런하게 개킨 후에 간밤에 그가 널려놓은 종이들, 지난 밤 제가 잠들어있던 동안 그가 내던졌을 수많은 음악들의 주름을 일일이 펴내어선 파일 사이에 끼워 보물처럼 보관하리라.


그 즈음이면 츠키나가 레오가 거실로 돌아온다. 제대로 머리의 물기를 말리라 주의를 준 후에 스오우 츠카사가 목욕을 마치고 나올 쯤이면, 지금 보아하니 시각은 아마도 저녁이 되기엔 아쉽고 점심이라 부르기엔 굉장히 늦고도 늦어버린 시간이 된다. 어디로 가서 무얼 먹으면 좋을까요, 두 사람은 애써 잘 개켜놓은 이불을 간이용소파로 사용한다. 그 위에 앉아서 스마트폰 따위로 이것저것을 들여다보다가 결국엔 초밥을 시켜 먹는다든가, 츠키나가 레오가 큰맘을 먹고 운전대를 잡는다면 꽤나 그럴싸한 저녁식사를 맞이할 수도 있으리라.


페트병이나 나방시체같은 지우개가루가 사방에 흩어진 썩은 바닥위에 덩그러니 놓여진 섬같다. 스마트폰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역시 피곤하니 시켜 먹을까요?”

라고 스오우 츠카사가 말하고,


으흠…… 스오가 좋을 대로!”

라고 츠키나가 레오는 말한다. 그럴듯한 식사를 하는 편도 좋겠지만, 두 사람 다 며칠을 굶었으니 거나한 것은 오히려 위장에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 과유불급이라고 뭐든 넘치면 독이다.


그럼 역시 시켜먹죠.”

메뉴는?”

초밥으로 하죠!”


변명 같은 읊조림이 뒤에 달라붙는다. 먹기도 편하고 내다버리기도 쉬우니까요……, 츠키나가 레오는 웃는다


주문전화를 걸어둔 뒤에 두 사람은 제법 분주하게 청소를 시작한다. 청소라 해봐야 아직 가사가 손에 제대로 익었을 리 없는 츠카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종류에 따라 타는 쓰레기와 안 타는 쓰레기를 분리하고 설거지-두 사람 다 먹은 게 없기에 양이 적어 가능한 일이다.- 따위가 전부였다. 그는 손이 여물지 못했다. 오히려 손이 야무진 건 의외로 츠키나가 레오였다. 말하자면 열심히 했지만, 청소엔 확실히 재능이 없는 스오우 츠카사였기 때문에 그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셈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뭐 어떠랴, 그중의 태반은 이 집에서 뒹굴 거리며 제가 늘어놓은 쓰레기일테니 마땅히 제가 치워야 할 몫이었다.


쓰레기봉투가 게걸스럽게 부른 배를 자랑할 때쯤이면 그들 몫의 식사가 도착한다. 두 사람은 제법 말끔해진 거실을 바라보다가 그날의 기분에 따라 정해진 식탁에서 식사를 했다. 언젠가는 버리지 않고 남겨놓은 귤박스였다든가, 어떤 날은 평범하고 멀쩡하게 공장에서 제작되었을 말끔하고 보편적인 식탁에서 밥을 먹거나, 어떤 날은 맨바닥에 그저 도시락을 둔 채로 나란히 앉아 재미없는 티비따위를 들여다보며 밥을 먹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런 걸 평범이라고 이름 붙여야 좋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오랜만에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며 두 사람은 밥을 먹었다. 한 달도 더 된 일이지만, 지난달 츠카사가 보고 싶다던 심야영화를 레오가 특별히 녹화해두었기에 두 사람은 영화를 보면서 초밥을 먹고 영화를 보다가 졸음을 느꼈다. 그렇게 잤는데도 불구하고 배가 부르니 졸음이 쏟아졌다.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잠은 자면 잘수록 poison같네요.”

?”

뭔가 천천히 비소에 중독되어 죽는 것처럼 잠에 중독되는 건 아닐까……


이런 엉뚱한 말을 내던지고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두 사람은 침실로 들어선다. 침실만큼은 정리하지 않아도 좋다. 이상할 치만큼 언제나 쾌적했고, 실상 사용하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이유기도 했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워 한 이불을 덮고 있다. 그러니까 잠들기 전까지 여느 연인이 그렇듯이 조곤조곤히 수다를 떨기도 한다.


내일은 off인건가요?”

아마도, 곡을 보냈으니까 사흘간은 부르지 않을 거야.”

그렇군요.”


얼굴을 마주본다. 숨과 숨이 섞일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입술을 마주하고 있는데도 두 사람은 조급해하지 않는다. 입을 맞추기 위해서라든가 호흡을 섞기 위해서 다급하지 않아도 되는 평온함이 두 사람이 서로 엮어놓은 손처럼 편안하게 둘을 꼬아놓고 있었다. 그 누구의 의도랄 것도 없이 으레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견고한 마음은 형태를 바꾸어 사람과 사람 사이를 묶어놓는다. 실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스오가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아?”

외박이 너무 길어지면 혼이 날 테니까요.”

같이 살면 좋을 텐데.”


간단히 말하자면, 오래된 연인.


절대로 허락해주시지 않을 거예요.”


덧붙이자면, 동거의 권유도 절대로 조급함이나 어두운 우려의 빛깔이라곤 조금도 채색되어있지 않다. 단순한 어리광정도에 그칠 뿐이다.


대학핑계를 대면?”

우선 지금은 방학이고, 리더의 집은 대학과 정반대라 곤란합니다.”

보지 못하는 시간이 보는 시간보다 길어짐이 싫다, 보지 못하는 시간보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는 시간이 조금 더 허락되길 바란다. 간단하게는 대화 한 번 나누지 못하더라도 살갗이라도 부비면서 잠이라도 들고 싶다는 일.


거짓말하면 안 돼?”

할 수 없어요. 부모님을 속인다니……

너무 착한 아이네~”


그러니 적정선이란 걸 지켜가며 서로가 평온한 연애를 해나간다. 적당한 정도에서 끊을 줄 아는 배려가 두 사람 사이에 깃들어있고, 어쩌면 이걸 이상적인 연인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다. 말하자면 그렇고 그런 일, 너무도 단조롭고 평화로워서 구태여 이야기로 다룰 필요도 없을 정도로 일상적이고 평범하다. 그런 연인의 어떤 하루.


두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암막 커튼을 뚫고 들어온 햇빛의 잔여물을 마주할 것이다. 이 집으로 이사 왔던 예년에 실수로 뜯겨져 나간 그 빈틈으로 빛이 스며들어올 것이다. 커텐은 츠키나가 레오가 백화점에 가서 손수 골라왔다. 빛이 스며들어오는 빈틈은 어디까지나 실수로 만들어진 일로 스오우 츠카사가 실수로 기다란 커튼을 밟는 바람에 만들어진 틈이었다. 불편할 것도 없었기에 츠키나가 레오는 커튼을 바꾸지 않았다. 슬쩍 찢어진 아랫단 하나 때문에 암실과도 같이 침침한 방의 어둠이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작고 사소한 틈에 불과했으므로.


이다지도 이른 밤에 두 사람이 아귀가 맞지 않는 몇 마디 말을 주고받다가 잠이 든다. 아침에 눈을 뜨면 우선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재차 잠에 빠져들 것이다. 그러다 정오를 한참이나 넘긴 시간에야 늦은 점심을 먹고, 츠키나가 레오는 차에 시동을 걸고 스오우 츠카사는 단출한 제 짐을 챙겨서 집으로 갈 준비를 한다. 집 앞에서 헤어지며 연인은 여타랄 포옹이라든가 뽀뽀라든가, 구구절절하게 풀이를 달아가며 풀어보이는 수학문제나 자랑하기 위해 허풍과 너스레를 섞어 이야기해야하는 팔리는 꿈처럼,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잘보이기 위해 구태여 인위적으로 만든 애정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자연스럽게 손을 흔들고 웃고 헤어진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섭섭하다든가 아쉬운 기분은 있어도 우울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다만,

두 사람에겐 내일이 있다.



*


앞부분이 스릴러 같아 고민을 했습니다. 이상하게 스릴러 같아요. 포카포카한 레오츠카를 쓰고 싶었어요. 뭔가 담백하고 평온하고 안정적인 연애를 이어나가는 두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보였다면 기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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