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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rst Step : 

첫걸음 혹은 한걸음



츠키나가 레오 月永 レオ X 스오우 츠카사 朱櫻 司



* 원작에서 해주지 않아서 제가 했습니다. 칠석에 함께 있는 우리 왕님과 막내!

* 원작기반, 하지만 날조가 있습니다. 유의해주세요!

 

* the Nature of Daylight

 


저 홀로를 두고 보더라도 그리 달갑지 않은 상황에서 의도치 않게 점철되어버린 서로의 우연으로 인해 마주하게 된 거북스럽달지 꺼림칙하달지, 낯이 익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온순한 양과 같은 얼굴로 과한 친밀감을 표하는 사람과 단둘이 미친 듯이 화를 내는 먹구름이 땅을 향해 투명한 창살로 꽂아대는 풍경을 바라본다는 기분은 과연 어떤 것일까.


그야말로 미친 듯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운동장 곳곳엔 작은 샘들이 한 그득이다. 마치 거대한 물방울 무늬를 찍어낸 갈색 천처럼 보인다. 불규칙적으로 수놓아진 그 동그런 샘의 수면 위로도 창살이 꽂힌다. 수면은 쉽사리 꿰뚫리고 창살은 가는 실선으로 이루어진 원형의 궤적을 남기곤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빗방울들이 웅덩이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지나가는 소나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아침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비의 연속이였으므로 단번에 그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걸 스오우 츠카사는 알고 있었다. 그는 제법 초조한 낯으로 제 휴대폰액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울리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며 휴대폰 액정만 들여다보고 있는 그런 그의 곁을 비에 젖어 늘어진 옷을 걸치고 있는 츠키나가 레오가 지키고 있었다. 구태여 말하자면 주인을 지키는 목줄매인 강아지는 아니고 비에 발목이 잡힌 건 확실하지만 실상 그는 제가 스오우 츠카사의 곁을 지키고 있다기보단 끊임없이 내리는 빗방울들을 시선으로 받아내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옳았다.


슬슬 그치지 않아주려나~”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츠카사를 향해 제 기분을 알리고 있었다. 스오우 츠카사는 다시 한 번 휴대폰 액정을 바라본다. 체감으로는 굉장한 시간이 제 몸을 쓸고 지나간 듯 한데 불과 채 1분도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는 무거운 숨을 뱉는다. 제가 원하는 시간은 아득한 점처럼 멀기만 하다.


소나기가 아닐까~?”

하루 종일 내리는 소나기가 어디 있어요.”

잠깐만, 대답하지 말아줘! 생각할게!”

네에……

! 장마다! 하지만 소나기가 계속 내리는 거야! 소나기들이 붙어서 장마가 되는 거라고! 마치 교향곡처럼! 아앗! 모처럼 영감이 솟아올랐는데!”

네에…… 다시 한 번 힘 없이 스오우 츠카사는 숨에 가까운 음성을 토해내며 휴대폰 액정을 바라본다. 아직까지도 연락이란 없었다. 단연, 부재중 전화고 뭐고도.

 

 

그는 50인치 텔레비전에 들어갈 정도로 작게 축소된 일본 땅 위에 붙여져 있는 우산들을 바라본다. 마치 스티커같다. 투명한 잔에 담긴 흰 우유를 마시며 츠카사는 우산들을 바라본다. 우산들을 밀고 오는 장마전선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비는 주말까지 이어져 월요일 아침에나 말끔한 하늘을 볼 수 있다며 아나운서는 노란 우비를 입고 과장된 몸짓으로 쓰고 있는 우산을 팽그르르 돌리며 웃고 있었다. 좌측 상단에 뜬 숫자를 확인한다. , 꽤나 어울리는 날일지도……? 그는 가볍게 생각하며 현관문을 나서 학교로 향하는 자가용에 올라탔다.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였다. 연이어 창문을 두들기다 못해 창틀을 타고 작은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빗물들을 보며 그는 꽤나 비극적이라 생각했다. 얼마나 참담한 심정이기에 저렇게 어두운 낯으로 웬종일 빗방울을 흘려보낼 수 있단 말인가. 모두가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을 피해 책상을 내벽 쪽으로 옮겼다. 창문과 멀어진 탓에 빗방울과는 멀어졌지만 빗물은 천천히 차고 넘쳐 언젠가 제 발밑을 적실 것만 같았다. 책상 하단에 자리 잡은 발판에 소리 없이 발을 올린다.


비가 쏟아진다 하더라도 사실 걱정은 없었다. 사물함엔 변변찮은 비상용 우산 하나가 있었지만, 비와 함께 빨리 달려가면 된다고 말하는 텐마 미츠루에게 빌려주었기에 그는 우산이 없었다. 저는 어차피 저를 데리러 올 자가용에 올라 집으로 귀가하면 될 터이니 우산따위는 필요없었다. 그런 그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운명은 그에게 학교 정문에 서서 하염없이 하릴없이 시간들을 흘려보내며 저를 데리러 올 기사를 기다리는 공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이제 뭐가 뭐였는지 하나도 기억이 제대로 나지도 않는다. 주변 소음에 묻힌 목소리는 혼자 꽁해져서 웅얼거리는 말처럼 들렸다. 정비를 한다고 했던가, 가벼운 접촉사고가 났다고 했던가, 그도 아니라면 타이어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던가, 그 무엇이 되었든 그렇기에 스오우 츠카사는 조금은 안일했던 자신의 행동-우산을 빌려줘버린 일-에 대해서 아주 약간, 아주 약간의 후회를 했다.


이곳에선 제발 돌발행동을 하지 말아주세요. 더러움이 물든다구요?”

아아?”

하긴, 이미 더러워져서 당신에겐 상관이 없을테지만, 그래도 Knights의 리더로서의 체면이 있으니 조금은 얌전히 있어주세요.”

아아……


그의 대답이 희미하다. 빗소리에 묻힐 정도로 가냘프다. 제가 심한 말을 했던가……? 하지만 평소에도 이와 같은 말은 자주 건네었고 그는 여타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뭣보다도 접점이 적었기에 그와 이렇게 장시간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일도 드물었다. 분명 지금이 비가 오는 방과후가 아니고 하늘이 맑은, 아니 비가 오더라도 레슨이 한창인 스튜디오였다면 이렇게 그와 얼굴을 마주하는 일을 거북스럽게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짧은 만남이 간간히 이어졌기에 그에 대해서 제대로 된 파악을 하지 못한 건 사실이였으나, 잔뜩 날이 선 말로 그를 할퀴어도 그는 언제나 잽싸고 유연하게 제 말을 피해가지 않았었나.

그런데 지금 이 모습은 뭘까.


빗소리가 들린다. 적막할 뿐인 두 사람 사이에 빗소리가 스며든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앞을 바라보고 있다. 서로를 좀처럼 쳐다보지 않는다. 스오우 츠카사는 말을 뱉을 수가 없었다. 적막함이 너무도 어색하고 거북스러워 무슨 말이라도 던져보고 싶었지만, 힘이 없던 그의 목소리를 생각하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제가 그에게 결례를 입힌걸까……? 평소와 같았다. 물론 그를 상대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자꾸만 성질이 욱하며 제법 언성을 높이게 되긴 했지만, 악의는 없었고, 그를 상처줄 생각도 아니여서……

배고파.”

……

어이~ 듣고 있어~?”

, ?!”


전혀 듣지 않았구만, 츠키나가 레오는 다시 한 번 배고파. 배고파서 영감이 떠오르지가 않아~ 이렇게나 아름다운 소리가 내 귀를 때리고 있는데!” 말한다. 바닥에 철푸덕하니 주저 앉아버린다. 스오우 츠카사는 제 입으로 토해질 목을 가까스로 막아내며 침묵을 지켰다. 어차피 그는 젖은 몰골이고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는 서서 한숨을 쉰다. 눈앞에 신기루처럼 자가용이 나타나기만을 빌고 있는데 손 끝에 무언가가 닿았다. 차가운 점같은 감각을 남기고 떨어지나 싶던 그 무언가는 제 손을 망설임없이 덮쳐왔다.


미끄러질뻔한 몸을 가까스로 세운 스오우 츠카사는 제 손을 덮쳐온 무언가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대체……?!”

계속 서 있으면 불편하잖아?”

지금 이 바닥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시나요?”

, 하긴! 공주님이니까 여긴 앉지 않겠네! 와하~”

크읏…… 공주님이 아니라 기사입니다. 기사!”


빗소리가 따가운 바늘처럼 제 머리를 쿡쿡 찔러오기 시작했다. 의도치 않은 상황에 정말로 개연성없이 돌발행동을 일으키는 그가 버겁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딱히 싫은 건 아니였지만, 그렇다해서 달갑다고 말하기엔 무언가가 부족했다. 손을 잡은 채 놓지 않고 바닥에 앉아있는 그를 내려다보게 되었다. 허리를 엉거주춤하게 구부린 채로 있어야해서 다리를 굽혀볼까 싶었는데,


손이 따뜻하구나, !”

그가 말했다. 

?”

손이 따뜻하면 마음이 차갑다던데! 너도 그래?”

글쎄요…… 스스로 나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조금 더 상냥해져보는 건 어때?”

그가 히죽이죽 웃는다. 왠지 뾰루퉁이 솟아올랐다. 손을 걷어쳐내고 싶었지만, 바닥이 미끄러워 자칫 잘못하면 제가 나뒹구는 수가 있어 입술을 힘주어 악물었다.


너무 엄격하면 힘들지 않아?”

무어가? 그가 말하는 대상은 추측으로만 가능했다. 그러니까 저에 대한 자신의 태도? 아니면 말? 행동?

어리광부리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한데.”

, 이해를 못 하겠네요.”

간단한거야! 우선 내 옆에 앉으면 돼!”

그게 무슨 상관이죠?”

계속 서 있었잖아? 다리가 아프지 않아? 그치만 네가 그렇게 서 있는 건 스스로 생각하기에 바닥에 주저앉는 게 꼴볼견스러워 보일까봐 일까나~”

어딘지 자연스럽지 못하게 되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어디까지나 내 생각!”

하며 산뜻한 어조로 말을 토해내며, 그가 자신의 말을 제 속으로부터 꺼내 놓아주든 제 손도 동시에 놓아주었다. 차가운 손가락들이 떨어져 나갔는데도 손은 좀체 차가워지지가 않았다.


계속 이어지던 자잘한 빗소리들의 간격이 점차 벌어지기 시작했다. 음의 기둥을 흔들며 빠르게 다가오던 빗소리가 점차 저들끼리 간극을 만들기 시작한다. 고요라는 이물질을 재빠르게 제 몸에 솎아넣으며 거칠었던 저들의 숨을 천천히 죽여간다.


, 비가 그칠 거 같은데!”

그 소리에 스오우 츠카사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슬쩍 차양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을 뿐인데 빗방울 하나가 눈으로 달려들었다. 급히 눈을 깜빡이자 빗물은 눈물처럼 뺨에 길을 트고는 사라졌다. 빗물을 닦아낼 생각으로 손을 들어올리는데 불연 듯,

울었어?!”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다시 제멋대로 손을 붙잡아왔다. 아아, 정말 돌발행동에 휘둘리는 일은 질색이다. 그러니까 이런 바라지도 않은 우연이라든가 제가 행한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돌발적으로 겹쳐진 그 인과만 아니였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손이 붙들려서……

,”


그가 멋대로 머리를 헝클어트린다. 착하다, 착하다, 라는 말을 입술로 반복재생하는 걸로 보아 저를 위로하려는 듯 했는데, 실상 제 뺨에 흐른 건 눈물이 아니라 빗물로,

울지 않았어요! 멋대로 쓰다듬지 말아주세요!”

위로받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 착하네!”

쓰다듬받을 이유가 전혀 없어요! 만지지 말아주세요!”

쓰다듬받는데도 꼭 이유가 필요해?”

허를 찔린 기분이였다. 명치를 얻어맞을 때처럼 숨이 목에서 막혔다.


, 그건 아니지만,”

그럼 된 거지!”

그가 웃으며 손을 떼어낸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정말로 비는 잦아들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옷이 축축하고 자신은 메말라있고, 운동장에 패인 웅덩이마다 물이 그득하게 차올라있고,


이쪽도 이제 안 우는 모양이네~”

그가 사뿐한 몸짓으로 계단을 내리며 말한다. 미간을 살풋 찌푸리며 그를 쳐다보자,


직녀!”


하고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웃었다. 그렇구나, 하고 생각한다. 스오우 츠카사는 그를 따라 차양 밖으로 고개를 다시 살풋 내밀고 계단을 한 걸음 내딛어보았다.


조금 먼발치에서 신발 밑창에 흐물해진 갈색천 낱조각 들을 들러붙인 채 걸어가는 그가 보였다. 아주 조금 망설이다가 스오우 츠카사는 조심히 그 땅으로 발을 내딛었다. 땅은 푹신했고, 부드럽게 자신을 받아들여주고 있었다. 제 뒤로 저의 발자국이 스며들고 있었다. 한쌍의 발자국 옆으로 또 한쌍의 발자국이 이어지고,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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