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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gédie - 6
*왕궁물로 레오츠카 가 보고 싶어서 쓰기 시작한 글.
설정 파괴 날조 주의!
“곁에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아.”
성문 앞에서의 작은 소동 후에 방으로 돌아온 텐쇼인 에이치가 제일 먼저 츠카사에게 던진 말은 이것이었다.
“네, 저도 저런 안하무인에 예의범절이라곤 눈뜨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무뢰한이랑은 친하게 지낼 마음이 없습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당연하다는 태도로 츠카사는 팔짱까지 끼어가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다니 안심이야……”
하고 그는 엷은 웃음을 얼굴 만면에 띄었다. 그럼에도 이마에 기워진 주름은 여전했다.
츠키나가 레오(月永レオ), 예상 밖의 변수였다. 그와 이렇게나 빨리 또 조급하게 대면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될 수 있으면 되도록 마주치고 싶지 않던 그가 귀궁하자마자 처음으로 마주친 인물이라는 게 썩 유쾌하지 않아, 텐쇼인 에이치는 미간을 찌푸린 채 창밖을 노려보고 있었다.
새롭게 떠오르는 샛별…… 이던가, 그의 별칭이. 서쪽 하늘을 거슬러 온 유랑꾼들로도 불리우는 그의 부족을 생각한다. 십여 년쯤 이 나라에 흘러들어왔을 때만 하더라도 보잘것없던 소수민족이 어느샌가 수도 서쪽을 점령할 정도로 거대한 군락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권력 체계를 만들더니 성에 기거하기 시작했다.
그저 갈 곳 없는 저들을 품어주길 바란다며 고개를 조아리던 천민들이 남부끄러운 줄 모르고 저들도 하나의 국가라며 그들만의 왕을 억지로 이 성에 밀어 넣었다. 텐쇼인 가문은 물론이요, 당시 실세를 장악하고 있던 세력들이 그를 반겼을 리가 없다. 그러나 그들이 세운 공은 인정해줘야 한다는 게 모두의 뜻이었다. 대외적으로는 궁에 들어온 우두머리들에게 그럴싸한 직위를 내려두고 뒤로는 뿌리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와 같은 놈들이라고 비웃는다.
아, 그렇다. 태생부터가 격이 다르다. 하늘과 땅, 그 말로도 표현이 부족하다. 그렇지, 어디서 굴러먹다 들어온 줄 모르는 유랑민과 달리 텐쇼인 가문은 이 나라의 기반과 기틀을 다지며 장장 150년간 맥을 같이 해왔다. 이 나라 자체가 곧 텐쇼인 가문이 아니던가, 텐쇼인 가문이 나라가 다름 아니던가……?
단단히 굳어있던 미간을 검지로 꾹꾹 누르며 텐쇼인 에이치는 생각을 멈추기로 하였다. 쓸데없는 생각에 낭비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어서 빨리 황자의 지위는 물론이고, 앞서 늙은 황제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를 준비만 해도 모자랄 시간이었다. 제 위치를 확고하고 명확하게 모두에게 명시해야만 한다, 각인시켜야만 한다. 이 내가 누군지, 텐쇼인 에이치가, 너희가 그토록 그토록 몰아내기에 힘쓴 내가 끝끝내 살아남아 돌아왔음을 증명한다. 죽임당하기 전에 먼저―,
생각에 잠겨 미동조차 없던 몸만큼이나 비집고 들어갈 구석이 없이 굳어있던 공기들의 정체를 깨트린 건 다름 아닌 스오우 츠카사의 노크 소리였다.
“텐쇼인 형님?”
가냘픈 경칩 소리가 선두를 치고 뒤따라 그의 조심스럽고도 조그마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치 누군가 엿들을까 두려워 귓가에 입술을 가만히 가져다 대고 남모를 비밀을 펼쳐 보이는 이처럼. 휘청거리는 공기들의 틈새로 자그마한 목소리가 부드럽게 기어들어 간다.
“츠카사?”
“방해되었다면 죄송해요. 하지만 저녁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방에서 나오시질 않으셔서……”
살짝 입을 벌린 문 사이에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한 채로 엉거주춤하니 츠카사가 고개를 빼꼼하니 내민 채로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는 이전부터 죽 내비쳤던 ‘언제나’처럼의 텐쇼인 에이치로서 웃으며 그런 츠카사를 향해 손을 내밀고,
“생각을 좀 하고 있었어.”
말한다. 그런데도 좀체 들어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 움츠린 그를 향해 에이치는 웃으며 손을 펼쳐 팔랑팔랑 흔들었다. 마치 나비의 날갯짓을 흉내 내듯이 아래위로. 그 날개짓이 츠카사에게 무사히 닿은 모양이다. 서서히 두 사람의 거리가 줄어들었다.
“역시 방해가 되었나요?”
거리가 가까워진 만큼 귀에 당도하는 목소리의 크기도 커졌다. 보다 선명하고 뚜렷하게 걱정이 맘속에 전해졌다.
“아니야, 안 그래도 그만둘 생각이었어.”
그 말에,
“생각을 그만둘 생각이요? 그건 생각을 한다는 말과 다름없지 않나요?”
하고 츠카사가 물어,
“후후, 그래. 네 말대로야. 그럴지도 모르겠네.”
텐쇼인 에이치가 웃었다. 웃음이 잦아든 다음에 이어진 건 침묵, 그 짧은 새에 무슨 결단이라도 내린 양 “저……” 하고 말문을 트는 츠카사의 얼굴이 짐짓 심상찮은 게 진지하기 짝이 없다. 어울리지도 않게 굳은 진중한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문득 치밀어 오르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텐쇼인 에이치는 “응?” 하고 부드럽게 말을 재촉해 보인다.
“고민거리나 우환이 있으시다면 언제나 제게 말씀해주세요.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들어드리는 건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으니까, 부디.”
“고마워. 네 말을 들으니 갑자기 자잘한 고민들이 사라지는 기분인걸?”
“정말이신가요?”
“날 못 믿는 걸까?”
“그런 건 아니지만.”
말끝이 몹시 흐리다. 낯빛도 삽시간에 우중충하게 그늘이 끼어있다.
“저런, 이 짧은 새에 궁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던 거야?”
“그게 아니라……”
“아니라?”
“텐쇼인 형님의 안색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으셔서 혹 병환이 깊어지신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기쁘다, 이 감정은 필시 기쁨이 맞기에, 텐쇼인 에이치는 환하게 웃으며 제 앞에서 꾸물거리는 하늘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소년의 손을 잡아 쥐었다. 갑작스레 손이 붙들렸기에 츠카사는 놀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그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한 낯으로 웃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도, 말없이 저를 붙든 손을 맞잡아보았다. 살갑고도 익숙하지만, 좀체 친밀해지지 못한 부드러운 손의 감촉을 조용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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