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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궁물로 레오츠카가 보고 싶어서 시작한 글... 드디어 레오가 등장해서 기쁘다... ...
“오늘 돌아오는 게 나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네.”
가히 천국의 궁으로 불리우는 곳은 그 규모나 웅장함이 남달랐다. 텐쇼인 에이치가 지방에서 거하던 처소處所라고 지칭되는 저택 또한 여느 가문의 저택 못지않게 객실의 수로 보나 평수로 보나 남부럽지 않다 못해 뒤지지 않을 정도였지만, 역시나 수도의 왕궁이란 곳은 그 특별함의 급이 달랐다. 커다란 거인 몇이 서로 무리를 지어 제 덩치를 자랑하기라도 한 듯 옆으로 넓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궁의 처마와 기둥들은 스오우 츠카사에게 위압적이다 못해 공포감을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살면서 이런 궁은 처음으로 보았다, 모든 게 낯선 형편이었기에 제게 접해오는 자극에 남다르게 움츠린 탓도 있을 터였다.
“아무래도 기사단이 돌아오는 모양이야.”
“기사단이요?”
“츠카사는 모르나, 십 여년 전에 이곳으로 유입되어온 유랑민들이지. 그들이 수도 서쪽에 군락을 만들었어.”
“유랑민……”
“서역에서 왔다나 봐.”
“서역이요?”
“응, 저 멀리 해가 지는 곳으로부터 이곳을 찾아왔지.”
그들의 마차가 멈추었을 때, 말발굽 소리가 서서히 몸집을 거대하게 불리며 다가왔다. 제멋대로 자라난 잡초 같은 거친 굽소리가 귀에 따갑게 꽂혀와 그의 고개가 절로 소리를 향해 돌아갔다.
수십 백마들이 마치 바다 위에 포말처럼 보였다. 그 가운데 작은 점 같은 검은 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저 흑마 위에 올라탄 이는 흑마의 주인이자 부대의 지휘관일 확률이 높아 보였다. 홀로 흑마를 타고 있다는 건 모름지기 가시성을 위해서일 테다.
한 부대의 수장首長 정도나 되는 이라면 나이가 지긋해 머리에 하얗게 센 머리카락이 서넛은 있다거나 혹은 한눈에 보기에도 튼실하고 건장한 체격의 사내일 거라는 게 모름지기 평범한 이들의 생각이다. 헌데 흑마의 주인은 몸체가 작았다. 그러니까, 예상보다는 작았다. 생각외로도 젊었다.
고작해야 저와 서너 살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을 텐데, 한 부대의 최상단에 있다니 대단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수도란 역시 뛰고 나는 사람들이 많구나, 속내로 감탄하고 있던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걸까, 그대로 스쳐 지나갈 거라 생각했던 발굽 소리가 그야말로 제 곁에서 얼어붙어버렸다. 당황할 새도 없이 말에서 내린 이가 서서히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거리가 점점 좁아진다. 어느새 세 뼘 정도의 거리, 그 거리에서 그가 자신을 위아래로 훑어본다. 어디 모난 곳은 없는지 흠이 있는 물건은 아닌가, 장터에 내몰린 강아지를 살피듯이. 업신여김이 담긴 눈빛이라고 생각했기에, 스오우 츠카사는 후에도 그리 추억했었다.
뭘 저리 뜯어보는 걸까, 저도 그를 업신여기며 뜯어주자고 생각했는데 그와 눈이 마주쳐버리고 말았다. 그에게 던지던 시선을 그대로 뽑아 땅으로 내리꽂자고 머리론 생각했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저를 보며 웃고 있었기에.
“네가 오늘 궁으로 들어온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말이야.”
그가 입을 연다. 제게 던지는 말인 줄 알고 하마터면 그는 반문할 뻔했으나,
“나도 네가 오늘 귀환한다는 말은 못 들었어, 츠키나가(月永).”
제 가까운 곁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텐쇼인 에이치가 그에게 대답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은 구면인 듯했다.
“흐응.”
흥미의 농도가 짙은 콧소리로 그가 짧게 대답을 던지니,
“아무래도 누군가 고의로 전달하지 않은 거겠지.”
텐쇼인 에이치가 받아 고꾸라트린다.
“그 고의의 누군가가 네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위해 그래야 하지?”
“무서워서? 시골로 도피해 계시던 차기 황제님?”
“내가 두려워하는 건 없어, 츠키나가.”
허세라도 부리는 이의 속내를 간파하는 듯한 시선으로 그가 텐쇼인 에이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서서히 훑었다. 시간이 짧았다. 그에 반하여 그의 눈동자가 뒤이어 꽂힌 스오우 츠카사를 살피는 시선이 꽤나 지긋했다. 눈과 눈이 또 맞았다. 관찰당하고 있다, 란 생각이 들어 그 날카로운 시선에 베이기라도 한 양 츠카사는 움찔였지만,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피하면 패배를 인정함이나 진배없었다.
“뭐, 너의 귀여운 강아지는 지금 두려워하는 거 같지만 말이야.”
“가, 강아지……?”
게슴츠레 뜨며 웃는 눈이 얄밉기 그지없었다.
“아, 새끼 강아지인가? 강아지도 새끼인데 새끼를 붙여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말야?”
“정말 무례한 사람이네요! 제겐 엄연한 이름이 있습니다.”
츠카사는 저도 모르게 발끈하여 소리치고 말았다.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자각이란 없어 보였다.
“저, 츠카사,”
그에 텐쇼인 에이치가 끼어들어 대화를 절단내고자 했으나,
“호, 그래? 그럼 자기소개를 해봐. 특별히 들어주도록 하지.”
하는 츠키나가의 도발에 부름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어느샌가 이 둘만의 대화가 되어버렸다, 에이치가 끼어들 틈이 바늘귀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곤란한 얼굴로, 또 불만스럽고 예의 한 번도 찌푸린 적이 없어 늘상 평평하던 흰 이마를 찌푸리며 노기가 가득한 츠카사를, 또 여유만만인 츠키나가를 번갈아 바라보고만 있었다.
“뭐, 이런 무례한 사람이 다 있어! 당신 같은 사람에겐 말할 가치도 없을 거 같습니다만, 이번만큼은 특별히 말씀드리도록 하죠. 제대로 기억하세요. 한번 밖에 안 말할 테니까.”
“나도 한 번밖에는 안 들어줄 테니 큰 소리로 말하도록 해? 이 귀까지 제대로 닿도록?”
“전! 스오우 츠카사! 스오우 가문의 장자, 츠카사입니다! 똑똑히 기억해두도록 하세요!”
제법 강단진 목소리였으나,
“오~?”
하는 말소리가 츠키나가의 반응 전부였다.
“잘 알아들으셨겠죠?”
“그래. 텐쇼인의 강아지!”
“!”
그가 웃는다. 분명 비웃음을 당하고 있다, 놀림거리가 된 게 분명하다, 츠카사는 분한 마음에 무어라 덧붙이고 싶었으나,
“장난은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좋지 않겠어?”
하는 에이치의 개입으로 단념했다.
“제 강아지라고 챙기는 건가?”
“실례. 그런 건 아니지만 소중한 동무가 누군가의 심심풀이가 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말이야.”
“동무?”
“그래.”
“네게도 그런 게 있는 줄은 몰랐네. 텐쇼인 황자 전하.”
그가 허리를 굽힌다. 시선을 아래로 내려 눈꺼풀을 훤하게 내보인 채로, 그러나 속내는 내비치지 않은 채로, 예의와 격식을 차려 한껏 공들인 인사를 선보인 후에 고개를 들어 세웠다. 또, 눈이 마주쳤다, 고 츠카사는 생각했다.
“그럼, 또 보도록 하지.”
분명 저를 보고 말했다. 그의 눈이 제 얼굴에 머물러 있었기에 츠카사는,
“하? 또 보는 일은 없도록 하죠!”
성을 부렸으나, 그는 또 재미있는 장난을 대한 양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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