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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스타

tragédie - 3

엘리스.aliceeli 2016. 11. 7. 16:52

마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놀라 몸을 움츠렸다. 잔 돌멩이 하나가 바퀴에 걸리는 일만으로도 마차는 온몸에 성이란 성은 다 내듯 크게 흔들렸기에 그때마다 익숙해지지 않은 몸이 자꾸만 벌떡벌떡 일으켜 세웠다. 그 모습이 뭐가 즐겁다고 텐쇼인 에이치는 제 옆에서 웃음만을 터트리고 있다. 보기 드문 큰 웃음이었다. 저러다 또 기침을 뱉는 건 아닌지, 숨이 막히다며 끙끙거리는 건 아닌지 보는 이가 더 걱정할 정도로.

“마차에 익숙치 않아서 그래. 조금만 지나면 익숙해질 거야.”

“그렇게 말하는 형님은 익숙하신가 봐요, 매일 침대에만 누워계시던 분이시면서……”

“아주 예전에 자주 타봤기 때문이야. 몸이 기억하고 있으니까.”

“몸이?”

“익숙해졌다는 말이야.”

“제 말은……”

이전에는 마차를 자주 타고 돌아다닐 정도로 건강해졌다는 말일까, 그렇지만 제 기억이 맞다면 처음 본 순간부터 그는 몹시도 허약하고 안색이 좋지 못했다. 잘 말해서 창백하다지, 시종일관 핏기가 가셨던 낯빛을 두면 오늘 내일 하는 게 큰 변은 아닐 정도로 유약했다.

“수도에는 병을 치료하러 가시는 거지요?”

“뭐, 일단은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겸사겸사 다른 볼일도 생겨서 말이야.”

“그렇다면 병이 다 나으면 이전처럼……”

“그래. 이전처럼. 어디든 네가 있다면 이전처럼 지내는 건 문제도 아니지 않니?”

“그 말은 칭찬인가요?”

“그럼. 너는 내게 큰 안정제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마치 다 나으시면 제가 필요 없을 것만 같네요.”

“그렇지 않아.”

돌아오는 목소리가 다급했다. 농간처럼 가볍게 던진 그 말에 반색을 보이며 그가 츠카사의 왼손을 움켜쥐었다.

“너는…… 무척 소중한 아이니까. 내가 경솔했어, 널 안정제 취급이나 하다니.”

“아, 그렇게까지 말씀하실 필요는 없어요. 제가 형님께 안정을 준다는 건 저로서도 기쁜 일이니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니?”

말끝에 불안이 묻어 있었다. 잔 먼지처럼. 스오우 츠카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안정제라던 그 말과 다르게 텐쇼인 에이치는 무척이나 불안한 모습으로 다시금 제 손을 꽉 쥐어오고 있었다. 고마워……, 하는 말끝이 흐려지는 바람에 스오우 츠카사는 미처 뒤에 덧이어지는 말을 듣지 못했다. 분명, 텐쇼인 에이치는 사과를 하고 있었다.


수도로 향하는 여정이 열흘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일주일쯤에 그쳤겠지만, 타고 있는 사람이 사람인지라 마차의 속도는 평보다 더디고 느렸다. 중간중간 밤이 되면 묵을 곳을 찾아야만 했다. 아무래도 그가 쾌유한 상태는 아니었기에 수도로 오르는 일보다야 그의 병환을 살피는 일이 우선이 되었다.

“몸 상태는 좀 어떠세요?”

“괜찮아. 이리 와서 나와 이야기나 좀 나눠줘.”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들었어요. 제가 시끄럽게 떠들기라도 했다간,”

“그편엔 네가 곁에 있어 주는 게 훨씬 좋아.”

텐쇼인 에이치가 손을 뻗어온다. 츠카사는,

“그래도……”

하고 망설였지만, 금세 표정을 달리하며

“나와 이야기하기가 싫은 거야?”

하는 그의 날카로운 목소리를 듣자 별 수가 없었다. 마차를 며칠 동안이나 탄 상태였기에 그의 피로는 극에 달해있다. 신경이 예민해지는 게 무리도 아니었기에 츠카사는 순순히 그의 곁에 가 앉았다.

“그렇다곤 아직 말 안 했습니다.” 하고 딱 잘라 말하면서.

“그럼 되었잖아. 무어가 문제야.”

“그치만 지겨우지 않으세요? 제가 하는 말들은 매번 똑같은 말들뿐인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

“거 보세요. 역시 안정을 취하시는 편이……”

“그래도 좋아. 혼자 누워있으면 마치 죽은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별로야.”

“텐쇼인 형님……”

“자, 그러니 어서 이야기하자.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망설임을 곱씹다 곱씹다 결국 스오우 츠카사는 오늘도 입술을 열어 대화의 운을 텄다. 닳고 닳은 이야기, 지겹도록 떠들고 너저분하게 늘어놓아서 새로울 것도 없어 더 없이 탁하고 낡아 버린 이야기를 텐쇼인 에이치는 언제나 새로 듣는 이야기처럼 눈을 반짝이며, 또 곱게 접어가면서 인자한 목소리로 응, 응, 수긍해가며 들어준다.

“너는 참 새처럼 잘 떠들어.”

하는 말에,

“그, 그런가요…… 시끄러우셨다면 죄송해요. 좀 더 조용히 말할까요?”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츠카사가 곤란한 기색으로 주춤거리기라도 하면 그는 황급히,

“듣기 좋다는 소리야.”

하고 덧붙이곤 웃는다.

“자, 마당에 어머니와 꽃을 심었던 일을 말해줘.”

“그 이야기라면 이미 열 번도 더 넘게 했던 이야기잖아요.”

“볼멘소리하지 말고. 자? 해줘?”


이렇게 땅을 파서 구멍 하나에 작은 씨 하나를 넣고 덮어주렴, 덮어요?, 그래, 이불처럼?, 그래, 이불처럼 덮어주어. 꽃아, 잘 자고 있어? 그리고 봄이 오면 일어나야 해? 꽃아, 잘 자? 봄이 오면 일어나?

머리칼을 쓰다듬는 손길이 부드럽고 폭신폭신하다. 귓결에 감겨오는 목소리는 그 어떤 음악 소리보다도 듣기 좋아 아침결에 듣는 새의 울음소리처럼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언제나 상냥하고 다정하고, 손길도 그만큼이나 따스하다. 언제든 떠올려보면 마음 한켠이 따끈따끈해질 정도로.

여름이 되면 꽃이 필 거에요?, 하고 어머니는 말하고, 그때는 볼 수 있어요?, 하고 어린 내가 물으면, 그럼요, 하고 또 머리를 쓰다듬고 뒷목을 어루만져 주시고, 웃어주신다. 봄볕을 쬔 듯 마음이 따뜻해진다. 언제나, 언제나.

그해 여름에 꽃은 피었지만, 어머니는 저물었다. 그렇게나 열심히 꽃에 물을 주고, 사랑한다 말해주었는데. 어머니는 끝끝내 피지 못하고, 꽃만이 살아남았다.


여름.




“지금도 마당에 꽃은 잔뜩 피지만, 그때는 꽃이 참 많았어요. 어머니는 꽃을 참 잘 돌봐주셨어요.”

“그렇구나.”

“네……”

대화 사이에 틈이 생겼다. 츠카사가 더는 말을 이어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기에,

“그만 잘까?”

텐쇼인 에이치가 말하고,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밤이 깊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츠카사도?”

“네.”

“아참,”

방을 빠져나가기 위해 돌아서던 발을 붙든다. 츠카사는 몸의 반쯤은 문 너머로 내민 채 그를 바라보고 서 있다.

“내일이면 수도에 닿을 거야.”

“에……?”

“뭘 그렇게 놀래.”

“그치만 가도 가도 들판만 나오기에……”

“수도란 원래 그런 곳이지. 그러니 기대하고 있어?”

“네. 그럼, 편안히 쉬세요.”

문이 닫힌다.

“츠카사도 오늘 밤은 부디 편안히.”

혼자가 된 방안에서 텐쇼인 에이치가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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