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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바스

[황흑] 그 언젠가 1

엘리스.aliceeli 2017. 4. 22. 10:57

* 순전 자기만족을 위해 쓰는 키세와 쿠로코의 이야기

* 10년 후의 미래 날조 설정입니다.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그 언젠가

kise ryota X kuroko tetsuya



낮은 밝다. 당연한 이치다. 시계는 정확히 정오를 가리키고 있고 지금 초침이 12를 지나쳤다. 사무실은 고요하다. 적막하다. 대화나 말소리 대신 그들은 키보드 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기라도 한 양 아무도 말하지 않고 오직 제 앞에 놓여진 네모난 발광체에 집중하며 손을 놀린다. 매끄러운 박자들이 한데 엉키면서 묘한 불협화음이 만들어진다. 마치 처음부터 박자따위는 안주에도 없이 엇박자와 엇박자들로만 이루어진 악보를 작성하고 연주하듯.

쿠로코 테츠야는 햇빛이 너무 밝다고 생각한다. 너무 한낮이었다. 블라인드의 틈새가 좀 더 촘촘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사무실 유리창을 가리고 있는 블라인드는 기다란 직사각형들이 주루룩 매달려있는 어디에서나 흔히 볼법한 무신경한 회색이다. 처음에는 겹겹이 잘 맞물려있던 사각형들은 서로 몸을 비틀며 허공과 햇빛과 바람에 이끌리는 대로 자주 제 몸을 방임한 터였기에 정갈하게 맞물려있던 틈새들은 어느샌가 제멋대로 벌어져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낡았다는 뜻이었다.

그 작은 틈으로 정오의 시간이 되면 쿠로코 테츠야를 정확하게 저격하기라도 하듯 햇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는 블라인드와 마주볼 수 밖에 없었다. 자리가 그러했으니까. 그는 정오의 햇빛을 외면하며 고개를 숙인다. 그의 연한 하늘빛 머리카락 위로 햇빛이 내려앉는다. 순수하다 못해 투명한 그 머리칼이 노란 정오로 물들어가기 시작한다. 머리 가닥 가닥 사이로 햇볕이 몸을 누이면 그의 얼굴은 어두워진다. 그는 정오의 시간이 부디 빠르게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보통의 회사들과 다르게 쿠로코 테츠야가 근무하는 회사는 점심시간이 1시부터 2시까지였다. 1시가 되면 사원들은 서로간의 눈치를 보다가 조용히 몸을 일으켜 회사 밖으로 제한된 자유를 찾아 떠났다. 그러나 쿠로코 테츠야는 달랐다. 그는 한참이나 한참이나 제 자리에 앉아 있다가 아침부터 들춰보았던 서류를 한 번씩 더 읽어본 후에야 자리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켰고, 차분한 몸짓으로 사무실 밖으로 나선다. 오늘은 20분이였다.

배가 고픈 날은 라멘집에 가 서둘러 끼니를 헤치우고 돌아오는 편이었지만, 쿠로코 테츠야는 편의점 음식을 선호하는 편이였다. 레토르트의 간편함, 시간의 절약,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편의점 도시락과 이온음료 한 병을 사들고 그는 편의점을 떠나 인근에 자리잡은 공원을 찾는다. 점심시간의 근린공원은 언제나 한산했다. 하기야 이 시간에 공원따위를 거닐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인간이란 얼마 되지 않는 게 현실이었으니,

쿠로코 테츠야는 도시락을 먹는다. 중간 중간 음료를 마신다. 그리고 정오의 햇빛을 받는다. 머리 위로 물드는 노란 빛. 평소보다 입맛이 돌지 않아 그는 도시락을 반절이나 넘게 남기고야 말았다. 이온음료만큼은 전부 비웠다.

그의 손가락이 주름진 미간을 주무른다. 피로에 찌들었을 눈을 가볍게 깜빡이고 손바닥으로 눈꺼풀 위를 따스하게 감싼다. 정오의 햇빛은 손바닥으로 가리고 눈꺼풀을 내려두어도 눈 앞에서 번쩍 번쩍 빛난다. 눈꺼풀 너머로 햇빛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정확히 일주일 전이었다. 그의 문자를 받은 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세이린 시절의 키세키들에게 문자를 받았다. 발신인은 키세 료타였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문구들을 보낸 이는 키세 료타가 아니기도 했다. 그가 보낸 메일은 누가봐도 아카시 세이쥬로, 그가 나열했을 활자들이 분명했다. 친근하게 쓰려 노력했지만, 행간 사이로 어설프게 등장하고야 마는 경어와 존칭들에 대해서 쿠로코 테츠야는 참으로 그답다고 느끼면서 메일을 읽어내려갔다.

요지는 일주일 뒤, 금요일 저녁에 가볍에 만나 저녁이라도 나누는 것이 어떻겠냐는 소리였다. 키세 료타와 단둘이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모두 함께, 함께인 자리였다.

 


쿠로코 테츠야는 생각한다. 벤치에 등을 기대고 텅 비어버린 음료병을 만지작거리면서 생각하고 있다. 갈 것인가, 가지 않을 것인가, 가지 못할 이유도 없었지만, 구태여 가야할 이유도 없었다. 모두의 모습이 궁금한 건 사실이였다. 프로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었기에 굳이 찾아보지 않더라도 심심찮게 티비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고, 궁금해진다면 언제든지 주간 스포츠지를 구매해 읽거나 웹서칭을 하는 방법도 있었다, 지만 쿠로코 테츠야는 단 한 번도 그 누구의 이름도 그곳에 써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구태여 찾아서 볼 이유란 게 없었다. 정확한 전부였다.

쓰레기통에 가차없이 도시락을 쏟아버리곤 쿠로코 테츠야는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돌아가서 일을 마무리해야만 했다. 주말을 편히 보내기 위해서라도 별탈없고 문제없이 서류들을 작성하고 업무를 보아야만 했다. 평소보다 더 꼼꼼하고 진득하게 살펴볼 것이다. 아마도 당연하게 야근이 될 터였다. 공교롭고 감사하게도.

서류를 만지는 손이 더뎠다. 퇴근시간이 되어갈수록 더더욱 그랬다. 떠오르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생각이 떠올랐고, 시계를 바라보게 되었다. 가지 않아도 된다. 불가피하게 참석치 못하게 되었다고 그저 간단한 문장 하나만 적어서 발송한다면 죄책감 따위는 갖지 않아도 되었다. 아니, 가지 못했다해서 죄책감을 지닌다는 것 자체도 너무나 우습지 않은가.

그는 생각했지만, 그렇게 생각했지만, 결국 7시를 한참이나 넘기고 나서야 남은 서류들을 품에 안고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버리고야 말았다. 지금이라도 가면 제대로 된 식사는 못하더라도 얼굴 정도야 비출 수 있을 것이다. 비추는 게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자그마치 10년 만의 만남이니.

 


지하철 문에 기대어 흘러가는 야경을 바라본다. 초조한 마음에 손목시계를 계속 바라보았다. 손목을 내려놓으나 싶으면 다시 올려다 시간을 보았고, 야경을 바라보는가 싶으면 어느샌가 다시 시계를 보고 있었다. 마치 초 단위로 시간을 재는 사람처럼 그는 시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임장소는 역에서 가까운 이자카야였다. 생각보다 평범하고 단촐하고 어디에서나 흔히 볼법해 인상에 남을 일도 없을 가게였다. 마치 어디를 가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정형화되어있는 이자카야.

쿠로코 테츠야는 그 앞에서 조금 망설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게 좋을까, 여기서 다시 돌아가는 편이 좋을까. 가게를 바라보면서 정말로 평범하고 평이하고 존재감이 희미하다고 느꼈다. 마치 자신과도 같지 않은가.

십년 동안이나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는 건 그만큼 제 존재가 가벼웠다는 증거기도 했다. 적어도 쿠로코 테츠야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고 떠올릴 수도 있고, 정형화되어있는 이 이자카야나 프랜차이즈 같은 존재가 자신이 아니었을까, 도 생각했다. 그러니까. 사실은 정말로 평범하게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던 친구에 불과했던 일일지도 모른다. 오래된 책장을 정리하다 먼지라도 털겸 꺼낸 졸업앨범을 뒤척이다가 자신의 곁에 서서 사진을 찍은 얼굴을 들여다보며 제게 이런 친구가 있었나, 하고 반추해볼 존재.

그들에게 반추할 기회를 줄 것인지 말 것인지, 쿠로코 테츠야는 문 앞에 서서 한참을 생각했다. 몇 번이고 네온사인을 몸에 휘감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술을 향수처럼 뿌리기라도 한 듯 알코올 향이 진동했다. 쌀쌀한 공기에 맞물린 알코올은 금세 휘발해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없던 양.

쿠로코 테츠야는 돌아갈까, 라고 생각했다. 들어갈까, 에 그저 망설임을 하나 붙였을 뿐인데 전혀 다른 말이 되어버린다. 그가 가방을 고쳐매며 몸을 뒤트는데 가게의 문이 열렸다. 인기척에 고개를 그는 고개를 돌렸고, 문 앞에 선 이와 마주한다. 인사를 해야 했다.

안녕하세요, 키세군.”

 



술자리에 물이 한창 올라 있었다. 개별적으로 2층 전체를 빌린 모양인지 손님이라곤 그들 뿐이었다. 쿠로코 테츠야는 잠시 머뭇거리며 층계 입구에 서 있다 말을 뱉었다. 모두, 오랜만입니다. 아카시 세이쥬로가 조용히 제 옆에 방석을 깔며 자리를 내어주었다. 자연스럽게 술잔이 제 앞에 놓아졌고 물흐르듯 그들 사이에 섞이며 술을 마시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료타는 보지 못했어?”

입구에서 마주치긴 했습니다.”

키세 료타는 한껏 반갑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밝은 목소리로 자신을 쿠로콧치!’라고 불러주고 있었다. 오랜만에 듣는 그 별칭에 이질감이 느껴졌지만, 그는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배이고 익히게 된 사무적인 미소였지만, 키세 료타는 눈치채지 못한 듯 발랄하게 말을 이었었다.

늦었잖아요. 얼른 올라가요. 모두 기다리고 있어요!’

키세군은 돌아가는 건가요?’

설마요! 그저 바람 쐬러 나온 거 뿐이에요.’

술자리에서 바람을 쐰다면 둘 중 하나였다. 만취가 되었던가, 담배를 핀다던가. 그러나 그의 얼굴에 홍조따위는 한치도 찾아볼 수 없었고, 언제나처럼 말끔하고 깨끗하게 단정된 얼굴이였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홀로 세월을 타지 않은 듯 가지런한 턱선과 부드럽게 흘러가는 목줄기, 그 위로 혹처럼 솟아오른 목울대.

먼저 올라가 있어요.’

금방, 금방 따라 갈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키세 료타는 웃고 있었다.

금방 온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늦네요.”

아아,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녀석이니까.”

우스꽝스러운 어린이용 시계를 손목에 차고 있는 미도리마가 한껏 점잔을 떨며 안경을 고쳤다. 저 시계는 분명 오늘의 럭키 아이템일테지,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운세에 대한 그의 믿음은 변함없었다. 왠지 모르게 친근함이 느껴졌다.

쿠로칭도 하나도 변한 게 없네.”

앞에 놓여진 안주거리를 주어먹고 있던 무라사키바라가 말해왔다. 아까부터 저를 힐끔거리는가 싶더니 경계가 아닌 관찰을 하고 있던 모양이다.

그런가요? 나름 변했다고 느끼고 있는데 말이죠.”

어떤 점에서?”

타이핑을 매우 잘하고 있거든요.”

별로 웃긴 농담은 아니었지만, 그게 무슨 즐거운 농이라도 되는 듯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 역시 조용히 웃었다.

확실히 변한 게 없다면 변한 게 없었다. 십년이나 지났지만 체중이 늘지도 줄지도 않았고, 신장 역시도 변할리 만무했으니까. 매년 하는 정기검진결과도 돈이 아까울 정도로 낭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변화가 없었다. 시력도 그대로, 혈압도 그대로, 체중도 근력도, 위장도, 백혈구 수치도. 모두 문제가 없었다.

테츠가 샐러리맨이라니, 도저히 상상이 안 가.”

상상할 필요 없이 지금 저를 보면 되겠죠.”

회사에서 그대로 온 길이었기에 양복차림인 자신이었다. 넥타이가 다소 흐트러지긴 했지만 어딜 보아도 흠잡을 곳 하나 없는 명백한 샐러리맨의 모양새였고, 제 뒤편에 내려놓은 가방이나 중철서류로 인해서 모로보나 어디로보나 자신은 샐러리맨이었다. 정확히.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테츠야? 우리끼리는 이미 어느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별로 궁금치 않아.”

그렇군요.”

네 이야기가 듣고 싶어.”

그는 앞에 놓여진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무엇을 말하면 좋을지, 방금 전에 술에 적셔진 입술인데도 불구하고 바싹바싹 말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을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그가 말을 떼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꽂혔다. 마치 뒷말을 기다리듯이 그의 입술이 열릴 순간을 노리는 듯 했다. 조용한 묵시,

그게 끝?”

여분의 시간이 지나도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 그의 입술을 대신해 아카시 세이쥬로가 입술을 열었다.

별다른 일이 없었네요. 들려드릴만한 특별한 사건이 없었습니다.”

그렇군.”

.”

무미건조한 그의 대답을 끝으로 어색해지나 싶던 공기는 다시 그가 들어설 때처럼 활기를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잔이 비어졌다 채워지고, 비어버린 술병이 떠난 자리는 새 병이 차지했다. 그들은 술을 무척이나 많이 마셨다. 그렇게 한참을 마실 때까지도 키세 료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바람쐬기가 무척이나 길어진 듯 했다.

키세 료타가 다시 자리에 들어선 것은 흥이 오를대로 한껏 올라버려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우니 2차라도 가자는 아오미네가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고 농성을 부릴 때였다.

“2차라니, 내일 스케쥴이 있는 사람도 생각해줘야져.”

그는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하긴, 나도 내일 점심비행기로 출장을 가야해.”

아카시 세이쥬로가 키세 료타의 말을 거들어주었고,

나도 내일은 모처럼의 주말이니 편안하게 쉬고 싶단 말이다. 네 변덕에 휘둘려줄 생각이란 눈꼽만치도 없으니 일어나라, 아오미네.”

나는 더 먹어도 좋은데 말이지~ 맛있는 안주, 또 먹고 싶고~”

모두의 눈길이 쿠로코 테츠야에게 향했다. 제게 선택권이 쥐어진 듯 했다. 쿠로코 테츠야는 잠시 망설이다,

저도 집에 돌아가 마저 처리해야할 서류가 있어서. 아쉽지만 2차는 무리입니다.”

하고 말했다.

 


아오미네와 무라사키바라는 자기들끼리라도 2차를 가겠다며 바득바득 우기며 제일 먼저 등을 보인 채 사라졌고, 미도리마는 막차 시간이 아슬아슬하니 택시를 타고 돌아가겠다며 역전을 향해 그가 날리던 슛처럼 신속 정확한 발걸음으로 걸어갔다. 아카시 세이쥬로는 곧 기사가 와 자신을 데리고 갈 터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웃었다. 그때까지도 키세 료타는 별다른 행동도 말도 없었다.

테츠야는 어떻게 갈거지?”

쿠로코 테츠야는 손목을 들어 시계를 바라본다. 간발의 차로 막차시간이 지나 있었다. 별 수 없이 택시를 타고 가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뭣하면 인근의 캡슐호텔이라도 잡아서 자는 방법도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맨션으로 돌아가면 될 터였으니 문제랄 것은 딱히 없었기에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택시를 탈까 해요.”

말했다. 그의 말에 아카시 세이쥬로는

그렇다면 나와 함께 가는 게 어때?”

하고 말했다. 잠시 갈등이 일었다. 쿠로코 테츠야가 거절의 말을 뱉으려던 그때,

쿠로콧치, 제가 데려다 줄 거니까여~ 저도 매니져가 오기로 했다구요?”

하고 키세 료타가 말했다. 아카시 세이쥬로의 손길에서 저를 가로채기라도 하듯 제 어깨에 능청스럽고 자연스럽게 팔을 두르며. 그 반동으로 쿠로코 테츠야는 잠시 비틀거렸고, 그 탓에 그의 가슴께에 오른뺨이 부벼지고 말았다.

그렇담 안심하고 부탁해보도록 할까.”

그러지 않아도 제가 알아서 잘 할꺼거든요~”

제 어깨를 감싸안고 있는 그의 손이 풀리지 않는다. 그의 손에 붙들린 어깨가 따뜻해졌다. 제 온몸에 깃들어있던 온기가 모두 그의 손바닥만을 향해 몰려간 듯, 따뜻하다. 자력에 이끌리듯 그의 손에 이끌린 제 몸의 온도가 그의 손바닥 아래, 자신의 어깨에 고여있다.

몸을 비틀어 빼낼까 싶었지만, 자신도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른 상태였기에 되려 그에게 안심하고 몸을 맡기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자신이 연달아 잔을 비울 때 키세 료타는 바람을 마시며 시간을 보낸 탓에 취기라곤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차를 기다리는 동안 가벼운 농담이 몇 번 오갔다. 아카시 세이쥬로의 출장 장소에 관한 이야기, 그곳의 바다가 얼마나 푸른지, 투명한지, 투명한 비취 속으로 제가 들어가는 것만 같다는 말, 마치 호박 속에 갇힌 채 화석이 되어버린 모기처럼 자신도 비취 속에 갇혀서 서서히 화석이 되어가고 있는 생물의 기분이 든다며 아카시 세이쥬로는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곳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어찌나 키가 큰지에 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지를 뻗어나가는 능력이 부족한 모양인지 오로지 일자로 길게 뻗으며 정수리에만 머리털이 남은 사람처럼 하나뿐인 기둥이자 가지 끝에 나뭇잎이 자란다는 말도 해주었다

그가 이어 몇 마디의 말을 더 하려는데 그의 앞으로 낯선 차가 매끄럽게 멈추어섰다. 부드러운 동작으로. 마치 순종하듯.

그럼 나는 이만 가보지. 오늘 즐거웠어. 료타, 테츠야.”

저도 즐거웠습니다.”

조만간 또 보도록 해.”

쿠로코 테츠야는 웃었다. 키세 료타와 쿠로코 테츠야는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 한밤의 도로 위를 매끄럽게 가로지르는 검은 차가 골목의 로터리를 돌아서는 모습을 보고 난 후 쿠로코 테츠야가 입을 열었다.

굳이 데려다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내가 바래다주고 싶은 거니까요.”

어깨에 둘러졌던 손이 풀어진다. 언제 온기로 감싸주기는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순식간에 풀려나가는 손가락들, 목 뒤를 감싸고 있던 팔뚝,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에 떨어져진 온기들이 날려간다. 밤 바람이 모든 온기를 제 몸에 묻히며 앗아가고 있었다.

묘하게 춥다는 감각이 일어 쿠로코 테츠야는 풀어져 있던 상의 자켓의 단추를 잠궜다. 키세 료타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통화를 하고 있었다. 데리러 온다는 매니져와의 통화일테지, 쿠로코 테츠야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본다. 지금 막 심야의 열두시가 지났다. 캡슐호텔에 자리가 남아있을까, 아마도 아직 한두석 정도는 남아있을 것이다. 금요일밤인 오늘은 날도 날이니만큼 사람들은 더 늦게 심야를 넘겨 새벽까지도 취할 것이다.

키세군.”

그가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려 쿠로코 테츠야를 바라본다.

역시 저는 택시로-”

싫어요.”

시간이 늦었습니다. 저를 바래다주면 키세군도 더 늦게 들어가겠죠. 그럼 내일 스케쥴에 지장이 있는 거 아니에요?”

바래다 준다고 말했잖아요.”

키세군.”

그가 시선을 돌린다. 마주하고 있던 시선을 피한다는 말보다는 그저 쿠로코 테츠야의 시선을 옆얼굴로 받아내고 싶다는 듯, 오래오래 제 옆얼굴을 바라봐주었으면 하는 듯, 줄곧 옆얼굴의 시간만을 내어줬던 사람처럼 시선을 사선으로 피하며 허공을 쳐다보고 있다. 숨을 내쉰다. 연기처럼 숨이 피어오른다.

쿠로콧치가 불편한 건 아니구요?”

쿠로코 테츠야는 말이 없다.

제 걱정을 하는 척은 그만둬요. 상관없으니까.”

키세군. 걱정은 진심으로-”

바래다줄게요. 기다려.”

별 수가 없었다. 쿠로코 테츠야는 빨갛게 차가워져가는 손가락을 주머니속에 처박은 채 꼼지락거려본다. 주머니에 든 것이라곤 100엔짜리 동전 몇 닢, 아침마다 목에 걸던 사원증이 전부인데 손을 괴롭힐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손끝이 따갑게 아려왔다. 목이 죄이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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