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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바스

[황흑/키세쿠로] 꿈의 흔적

엘리스.aliceeli 2017. 5. 4. 11:32


* 원작과 차이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캐릭터 해석과 재창작이 들어가 있습니다.

* 조금은 예민한, 거북한 소재가 들어있을수도 있습니다. 

 

 

 

 

 

 

 

 

 

날봐요, 쿠로콧치. 그렇게 말하면서 키세 료타는 입술을 핥고 있었다. 혀가 스쳐지나갈 때마다 그의 입술이 검붉은 빛으로 서서히 물들었다.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걸까. 자신은 그런 그의 입술에 매달려서 정신없이 탐하기에 열중했던 것 같다. 숨 쉴 틈도 없이 그에게 매달려 그의 아랫입술을 삼키듯 빨며 물어뜯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자신이 왜 이러는 것일까?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서 요동치던 것도 아주 잠깐, 그의 이름을 목너머로 내밀어 그를 제지하기도 전에 다시 입안을 파고들어오는 그의 혀로 인해 다시 소리는 먹히고 말았다. 이러면 안되는데……, 생각은 언어로 한데 뭉켜 혓바닥 위에 올려져 있었지만 입 밖으로 내어지지 못한 채 그저 혓바닥 위에서만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이리와요, 쿠로콧치……”

“키세군, 이런……이런 건……”

 

그는 자신을 보면서 웃는다. 평소엔 샐쭉한 고양이 같던 눈이 접히면서 아래로 쳐지고 눈과 반대로 입 꼬리는 올라가있다. 쿠로콧치. 뺨에 입술을 올렸다 떨어트리면서 계속해 쪼아 먹듯 입을 맞춰온다. 입에서 뱉어지던 소리들은 어느 샌가 열에 한데 뭉쳐 딱딱하게 변해버렸다. 한데로 뭉쳐져있던 소리들이 목울대를 타고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뭉쳐진 음성 뒤로 그의 이름을 끊어트리듯 내뱉자 그에 따라 그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쿠로콧치.”

 

목을 따라 흘러가는 소리. 내가 좋아요? 그의 물음에 답하기도 전에 안에서부터 무언가가 뜨겁게 쏟아져나갔다. 천천히. 그와 동시에 천천히 동굴을 빠져나오듯 자신의 눈이 어둠속에서 떠졌다.

 

“……”

 

눈을 뜨고나니 되려 그것은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꿈? 이것이 꿈이라고? 아닐거야라고 변명하기도 무섭게 허벅지 사이에 느껴지는 축축함에 한숨이 흘러나왔다. 축축해진 아랫도리를 벗어 세탁기에 집어넣으며 왠지 모르게 처량한 기분이 느껴지고 있었다. 세탁기 속에 빙글빙글 돌아가며 젖어가는 바지와 함께 자신의 기분역시 우울함에 축축하게 젖어가고 있었다.

 


 

꿈의 흔적 (2013.03.07. 22:54)

w. 아마네 엘리스

 

 

 

평소와 다름없는 평범한, 지극히도 평범한 오후의 시간이었다. 하늘빛이 적당하게 그을린 오렌지 빛으로 젖어가고 있었고 그 색이 어느 샌가 창문을 타고 번지듯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공중을 날아다니던 먼지알갱이에 햇빛이 달라붙었다. 보기 좋게 물들은 먼지의 빛, 입안에 넣으면 달짝지근한 맛이 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바닥에 드러누운 채 찬장을 눈에 담고 있자 어느 틈엔가 다가온 그가 찬장대신 자신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뭐해요? 하고 그가 묻기도 전에 그에게 반응하듯 몸이 일으켜 세워지고 말았다. 아슬아슬하게 그의 이마에 자신의 앞머리가 스치었다. 조금만 더 가까웠어도 머리끼리 부딪치고도 남을 거리였다. 갑작스레 몸을 일으킨 자신에게 놀라 그가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놀랐잖아요.”

“아, 죄송해요.”

 

놀란 그를 향해 황급히 사과를 하면서 바닥과 비비듯이 몸을 뒤로 빼내었다. 자신의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도 그와의 거리가 필요했다. 자꾸만 간밤의 일이 너무도 생생하게 뇌리에 박히는 통에 하루 종일 마음이 어수선하기만 했다. 어수선해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 마음과는 반대로 주변의 풍경은 그날따라 평소보다 더 질서정연해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더 심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자신의 마음은 수라장이 따로 없는데 코트위에서 공을 이리저리 패스하는 자신의 몸놀림은 일사불란하기 짝이 없었다.

 

“오늘 컨디션이 좋은 모양이네.”

“네?”

“아니, 테츠야가 평소보다 몸놀림이 좋아서 말이지.”

 

엄하기 짝이 없는 그 아카시 테츠야까지 자신을 칭찬했으니 말이다. 표면일 뿐인 미소를 엷게 얼굴에 퍼트리며 감사합니다하고 웃는 자신을 보면서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뭐, 오늘이 아니더라도 그의 속내는 그 누구도 쉬이 읽을 수 없을 터였으니……. 자신은 그 미소를 가뿐히 아무렇지도 않게 가뿐히 마주해보이면서도 자신을 향해 꽂혀오는 키세 료타, 그의 시선만큼은 마주할 수가 없어 등 뒤로 넘기며 피해버리는 것이었다. 분명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평소와 다름없을 터였는데.


역시 간밤의 꿈이 문제였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쿠로코 테츠야는 자신의 뒷머리를 긁어내렸다. 손가락사이로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달라붙어 제법 시원하면서도 끈적거리는 감촉을 만들고 있었다.

 

“저……”

 

한참을 자신의 앞에 가만히 쪼그려 앉아있던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 묘하게 긴장되면서 입안에 침이 고였다.

 

“오늘 무슨 일 있어요?”

“네……?”

“아니, 쿠로콧치. 오늘 평소보다 묘하게 지쳐보이기도 했고……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뭐라고 말해야할까.”

 

우왕좌왕, 정리되지 않은 몸짓으로 그가 이리저리 과장되게 손을 움직이며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어있는 머리카락이 반짝인다.

 

“동작은 매끄러운데……”

 

머리카락을 따라 매끄럽게 흘러내려간 시선이 어느 샌가 그의 입술에 닿는다. 닿았다. 닿아버리고 말았다. 적당히 젖은 탓에 축축한 빛깔의 입술이 빛나고 있었다. 그가 무어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은데……소리는 어느 샌가 귀에서 멀어져, 안으로 파고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못한다.


나는 간밤에, 꿈에서 그와 키스를 나누었다. 쿠로콧치, 다정한 목소리로 그가 나의 이름을 불렀고 나는 그의 부름에 응하듯 그의 이름을 불렀었다. 부드럽게 나의 입술을 쪼아오는 그의 입맞춤에 나 역시 정신없이 그에게 매달렸었다. 그래, 그랬었지. 그런데…….


 

“저.”

“에?”

“가볼게요.”

“어, 자, 잠시 만요. 쿠로콧치. 내 말 때문에 기분 상했어요? 아니, 그건……”

“아니, 아니에요. 키세군 탓이 아닙니다.”

 


변명하듯 황급히 그에게 대답한 채 자신을 만류하는 그의 손도 거칠게 내치며 체육관 밖으로 내달렸다. 숨이 목까지 차올라, 힘들어서 더 이상은 뛸 수 없다고 다리가 아픔을 호소해 그제야 자신은 발걸음을 멈출 수 있었다. 침을 삼킬 수가 없어 입 밖으로 토해내듯 뱉었다. 마치 점을 찍어놓은 듯 짙게 물든 자신의 침을 보고 있자 문뜩 자신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쿠로코 테츠야는 눈물을 흘렸다. 아니, 사실 영문이라면 알고 있다. 간밤의, 간밤의 꿈이 문제야. 그렇게 원망하면서 쿠로코 테츠야는 눈 위를 팔로 억세게 비볐다.


간밤에 자신은 키세 료타와 키스를 나누었다. 꿈은 너무도 정연해 그것이 꿈의 일인지, 현실인지 모호할 정도 생생했다. 꿈은 흔히 무의식의 욕망을 표출한다고 하지, 그렇다면 자신은 여태껏 키세 료타를 그런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단 말인가. 그는 자신을 누구보다 소중히 아껴주는 친구인데……. 친구를 욕망의 대상으로 삼은 자신을 향해 모멸과 더불어 경멸이 마음 한 켠에 쌓이는 것을 느끼며 쿠로코 테츠야는 다시 한 번 세게 눈을 부비었다.


바닥에 뱉어놓은 침자국은 어느 샌가 서서히 말라가 그 자취를 감추었지만 자신의 마음속에 물든 죄책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은 채, 계속 그 색을 짙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너무도, 너무도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그날 밤, 쿠로코 테츠야는 또 다시 꿈속에서 키세 료타와 입을 맞추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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