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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바스

[황흑/키세쿠로] 어떤 꿈 이야기

엘리스.aliceeli 2017. 5. 4. 11:36

키세군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다. 상냥한데다가 웃는 모습이 가련해서 지켜주고 싶은 아이라면서 그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 여느 때보다 해맑고 부드러워 보이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는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쿠로콧치’라고 나의 이름을 부르면서. 얼굴을 비추는 햇볕이 따갑기 그지없었다.




어떤 꿈 이야기 (2012.10.19. 00:20)


- 쿠로코를 위로해준 코끼리씨와 친애하는 키세 료타와 쿠로코 테츠야! 그리고 로드엔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w. 아마네 엘리스



그가 찾아오지 않았다. 매일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교문 앞에 서 있던 그의 모습이 오늘은 웬일인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습관처럼 그의 모습을 찾고 있었다. 그를 찾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도 못한 채 교문 앞에서 한창이나 멍하니 서 있었다. 평소라면 여느 때처럼 ‘쿠로콧치’하며 손을 흔들며 그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어야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멍하니 서서 뭐하냐?”

“아!……카가미군이군요.”

“하? 뭐야, 그 표정?”

“네? 제……표정이요?”

“뭔가 굉장히 실망한 듯 한 표정인데말야.”

“별로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심드렁하게 그는 대답하며 하품을 내뱉고 있었다. 오전내 잠을 잤는데도 불충분한 모양인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가는 길에 마지바에나 들려 치즈버거를 먹겠다며 그와 횡단보도에서 갈라졌다. 오늘은 무언가 먹을 기분이 들지 않았다. 묘하게 피곤했다. 속도 좋지 않아 뱃속에 무거운 짐이 한 뭉탱이 가득 얹혀져있는 것만 같았다. 속이 답답했다. 서둘러 집에 돌아가서 쉬는 편이 좋겠다 싶어서 걸음을 서두르던 찰나였다. 건너편에서 낯익은 이름을 부르는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들릴 리가 없는데……그가 여기에 존재할 리가 없는데.

그와 나 사이로 커다란 강이 하나 뻗어져 있었다. 회색빛의 아스팔트와 그 위를 짓누르고 지나가는 자동차의 매연으로 일구어진 소음의 강이였다. 소리를 질러 이름을 부른다면 그가 돌아볼 것이 분명했지만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없었다.

그의 곁에 선 장밋빛의 뺨을 지닌 아이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아아, 정말로 가련한, 웃는 모습이 마음 아플 정도로 가련한 사람이었다. 예쁘다거나 특출 난 미인이 아니더라도 이미 끝난 게임과도 같았다. 자신에게는 승산이 없었다. 왜냐면……


그 애는 여자애잖아……


무기력한 자신에게 허락된 것이라고는 납득하는 것밖엔 없었다.



꿈자리가 사나웠다. 괴기한 꿈이라고 생각했다. 오전나절 내내 머릿속에서 꿈은 떠나지 않고 있었다. 키세군이 꿈에 나왔다. 평소같이 웃고 떠드는 모습이 아니었다. 차라리 평소와 같이 꿈에서 나의 이름을 부르면서 달려와주면 기쁘기라도 할 텐데, 나는 그에게 그 어떤 말도 뱉을 수 없었다. 다리를 얻는 대신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마냥 목소리가 나오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목소리라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부를 수 없었다.

그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있었다. 너무나도 행복한 듯이 미소를 짓고 있어서 나는 그를 부를 수가 없었다. 그 상냥한 미소가 내게로 향해 올 거란 보장이 없었다. 누군가 목을 조르는 듯이 가슴이 답답했다. 어느 샌가 내 목을 한 마리 뱀이 휘감고 있었고 가슴엔 코끼리가 들어차 앉아 있었다. 몸부림치면 칠수록 뱀은 점점 더 세게 내 목을 휘감아오고 코끼리는 더욱 더 커져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도와줘요. 키세군!」


소리 내 그를 불렀을 때 그는 나를 향해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돌아선 그의 손이 잡힌 여자아이의 얼굴이 갓 삶아낸 계란마냥 하얬다. 공포에 눈을 떴다. 햇살은 너무도 포근하게 방안을 비추고 있었고 불어오는 바람에 커튼이 엷게 나부끼고 있는 평범한 풍경이었다. 손등에 두 어 방울 물기가 떨어지고 있었다.

좀 더 빠르게 그를 불렀다면 그가 나를 도우러 달려와주었을까. 아니……부르지 않은 게 잘한 거야. 그가 달려왔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코를 훌쩍이며 자리를 박차듯 일어섰다. 입술 끝께로 엷은 짠맛이 났다.




“쿠로콧치!”

“키세……군?”

“이제 끝난거에요? 기다렸다고요~세이린은 부활이 길구나~”

“왜……”

“응?”

“왜 여기……”


기대하지 않고 있던 일이었다. 평소처럼 그는 교문 앞에 서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단지 하루였을 텐데,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미소 짓는 그를 굉장히 오랫동안 보지 못한 것만 같이 그리운 감각이었다. 보채는 듯 한 그의 이끌림에 서둘러 교문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가요! 배고프다!”

“아니, 저, 키세군……”

“응? 왜 그래요?”

“아니……”


그에게 묻는다면 그는 뭐라고 답을 할까. 알 수 없는 일이였다. 어제, 그 사람. 누구에요? 누구인데 그렇게 다정하게 웃고 있던 거예요? 누군데 손을 잡고 있었어요? 그러나 나는 물을 수 없었다. 그저 어쩔 수 없이 어울린다는 듯 한 평소와 다름없는 웃음을 띠면서 그의 손을 잡는 수밖엔 없었다.

몇 번인가 함께 있는 도중에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고 그 때마다 그는 뭐가 그리좋은건지 행복하단 미소로 재빨리 휴대폰의 자판을 누르고 있었다. 누구에요? 다시 목끝까지 차오르는 질문을 내리눌렀다. 어젯밤의 꿈과 같았다. 뱀이, 뱀 한 마리가 목을 꽉 억눌려 그에게 향할 내 질문을 누르고 있었다. 속이 좋지 않았다.


“안색이 좋지 않네요. 쿠로콧치.”

“아. 그래보여요?”

“네. 어딘가 피곤해보여요……훈련 많이 힘들었던거에요?”

“아니. 괜찮아요. 아무래도 간밤에 좋지 않은 꿈을 꿔서요.”

“어떤 꿈이었기에?”


걱정스런 표정으로 묻는 그를 향해 나는 그저 엷게 웃어 보이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차마 입을 열수 없었다. 입을 여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질문에 그는 장난스레 웃으면서 나를 위한 거짓말을 해줄지도 모를 것이고 내가 어제 본 것이 그의 여자 친구가 아닐 수도 있는 일이었다. 다만. 그래. 다만…….

혹시 라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희망을 지니기 위해 저 혹시 라는 말을 쓴다. 그렇지만 지금의 자신에겐 저 혹시 라는 말에 기댈 얄팍한 희망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그저 다만 그의 입에서 나올지 모를 긍정의 대답에 미리 질겁하고 있을 뿐이었다. 혹여 라도 나의 우려가 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그 가능성. 나는 겁쟁이였다.


“자, 그럼 내일 봐요!”

“내일……”

“앗, 왜 그래요? 내일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아니. 그저……”

“그저?”

“이렇게 매일매일 찾아오는 게 키세군에게 힘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에이, 전혀 그렇지 않은걸요. 그는 웃으면서 나의 머리를 쓰다듬고 손을 흔들면서 사라진다. 점점 작아지는 그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치기가 올라와 그 자리서 모두 토해버리고 말았다. 그제야 목을 틀어막고 있던 뱀이 떨어져나가고 그제야 위액이 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가슴속의 코끼리를 뱉어내겠다는 듯이 바닥에 얼굴을 묻고 헛구역질을 해댔다. 시야가 흩뿌였다.



또 꿈을 꿔버렸다. 이번에도 변함없이 꿈속의 키세군은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있었다. 이번에는 확연히 웃는 얼굴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첫 번째의 꿈보다는 목에 휘감긴 뱀의 느낌은 덜했지만 코끼리는 확실히 커져 있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오늘도 꿈속의 그는 그 여자애의 손을 잡고 있었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지만 오늘도 변함없이 키세군은 행복한 표정으로 미소 짓고 있었다. 살풋, 그가 내 쪽을 향해 바라본 듯 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시선이 나를 향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춰버린 자신이 있었다. 쿠로콧치하고. 이어지는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를 향해 대답을 하고 싶었다. 이쪽을, 봐주세요……

하지만 여전히 목소리는 터져 나오지 않았다. 소리를 내려고 하면 할수록 목을 죈 뱀은 더욱 더 세게 똬리를 트고 있었다. 가슴에 들어찬 코끼리가 세찬 소리를 내며 나를 짓밟는 순간 쿠로콧치, 하고 나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아득히 멀어지고 있었다.


지독한 악몽이다. 이틀내 연속해서 그의 꿈을 꾸고 있었다. 슬슬 끝나줬으면 좋겠는데……. 꿈을 꾸느라 제대로 잠을 이루지도 못해 피곤함은 더했다. 가슴이 아니라 어깨를 코끼리가 짓누르고 있는 듯한 피곤함이었다. 코끼리가 한 열댓마리 어깨에 올라가있는게 아닐까싶을 정도였다. 자신이 참을성이 없는 편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감정의 문제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것일까. 끝도 없이 초조해지고 있었다. 고작 이틀새에 자신의 급격한 감정의 변화가 스스로도 놀랍고 무서울 정도였다. 방과후가 두려워졌다. 교문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그를 보는 일이 괴로워질줄이야…… 그렇지만.


“쿠로콧치!”

“키세군……”

“오늘은 어제보다 일찍 끝났네요!”


밝게 미소짓는 그를 보는 순간 괴롭다는 생각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평소랑 다름없는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키세군……”

“응?”

“……아니에요.”


그에게 말을 해볼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말할 수가 없었다. 다만 마음속 깊숙이 오늘 그의 꿈을 꾼다면, 반드시. 꿈에서 목에 똬리를 튼 그 뱀을 찔러 죽이리. 그리고……그를, 그를 죽이자고 결심했다.

하지만 끝끝내 꿈속에서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그를 죽일 순 없었다. 쿠로콧치하고 웃으면서 그는 나를 향해 손은 흔들고 있었다. 네……네, 저에요…… 나 역시 웃으면서 그를 향해 손을 흔드는 일밖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 때문에 자꾸만 입안에선 짠맛이 났다.


꿈에서 깨었을 땐 온몸이 땀에 젖어있었다. 어라……하는 그 짧은 틈 사이로 쉴새없이 눈물이 흘러내리면서 손등을 적시고 있었다. 오늘, 오늘 그를 본다면 반드시 축하한다고 말하자고 다짐했다. 그 순간 마음속의 코끼리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괜찮니?라고 더없이 상냥하게 나의 왼쪽 가슴을 어루만져주면서.

나쁜, 나쁜 꿈은 아니었다. 그래도 꿈속에서 나를 향해 웃어준 그는 비록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있었지만. 응. 분명히 더할 나위 없이 멋있는 나의 키세 료타였다……



“쿠로콧치”

“키세군.”

“응……?”

“축하해요.”

“뭐가……?”

“축하 인사가 많이 늦었네요. 여자친구. 축하해요.”


저번에 길에서 봤어요. 키세군의 말대로 상냥하고 웃는 모습이 가련해서 귀여운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잘 어울려요. 축하해요. 두서없이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의 대답은 하나도 듣지 않은채 자신의 말만 쏟아내고 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그렇게 그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흐응……그렇구나.”

“……”

“여자친구……믿은거에요?”

“키세……”

“생각보다 단순하네요. 쿠로콧치는. 귀여워.”


그는 웃는다. 배를 잡고 뭐가 그렇게 웃긴건지 한참을 웃으며 나의 이름을 부르고 나의 손목을 낚아채 자신의 품안으로 나를 가둬넣는다. 키세군? 어리둥절해하는 나의 뺨에 입술을 맞추면서 귓가에 이름을 속삭이고.


“저기요, 쿠로콧치.”

“네……?”

“만약 내가 전부 다 거짓말이라고 했다면 쿠로콧치, 화내려나?”


장난스레 웃는 그가 뺨을 슬며시 메만져왔다. 그의 손끝이 묘하게 싸늘했고 그의 속눈썹이 파리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슬며시 고개를 저으면서 그런 그의 등을 옭아매었다. 아니요, 라고 중얼거리면서. 안도감이 묻어나오는 그의 한숨소리를 들으면서 오늘 꿈에 그를 죽이지 않기로 결심한 것을, 정말로,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꿈에 그는 나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 희고 고운 손으로 내 목에 감겨있던 뱀을 풀어주었다. 키세군. 네. 그는 그녀가 아닌 나의 뺨에 입을 맞춰준다. 그리고 미소짓는다. 따뜻하고 상냥함게 눈물이 베어나왔다.

괜찮니? 마음속에 있던 코끼리가 앞에 서 있었다. 응. 이제 아프지 않고? 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다. 코끼리는 앞발을 들어 부드럽게 나의 왼쪽 가슴을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응, 고마워…….

코끼리가 빠져나가 가슴이 텅 비었는데도. 어쩐지 외롭지 않았다. 쿠로콧치, 하고. 나를 향해 웃는 노랗고 따뜻한 꽃이 한송이. 가슴에 피어오르는 소리가 톡, 하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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