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쿠로바스

[황흑/키세쿠로] 연민

엘리스.aliceeli 2017. 5. 4. 11:31


창밖으로 생각난 듯이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나, 둘, 눈앞에서 흩날리던 눈송이들이 어느 샌가 갈색의 운동장 위에 소복하니 쌓이고 있었고 그 운동장 구석 한 켠에, 춥지도 않은지 새하얀 목덜미를 드러내놓은 채로 쿠로코 테츠야가 쪼그려 앉아있었다. 솜털이 보송하게 올라있는 것만 같은 흰 뺨의 앳된 그가. 손을 입가에 데고 호호, 하고 불고 있는 모양인지 아지랑이 같은 입김이 그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입김정도로 추위가 가실 리 없는데 그는 열심이었다. 추위 탓일까, 뺨은 물론이고 드러난 목덜미도 새빨걨다.

 



 

연민, 목덜미 (2012.12.07. 20:23) 


w. 아마네 엘리스

- 친애를 담아 쿠로코 테츠야, 키세 료타에게.

 



 

 

춥지도 않나, 뭐 저렇게 목덜미를 드러내놓고 있을까……. 고개를 푹 수그린 탓에 드러난 목덜미를 보며 키세 료타는 한숨을 내쉬었다. 추운 창밖의 공기와 다르게 온풍기를 틀어놓은 탓에 따듯한 교실의 공기가 창문에 서리를 만들며 자신과 그 사이에 틈을 만들고 있었다. 뿌옇게 김이 오른 창문을 키세 료타는 닦아내었다.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손에 김을 불어 넣고 있던 쿠로코의 시선이 어느 샌가 운동장 구석으로 향해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탓에 앞머리가 어지럽게 휘날리는 데도 고정된 시선은 끄덕이지 않은 채 올곧았다. 저 시선에 끝에 무엇이 닿아있는 걸까, 주머니에 넣은 손을 꼼지락거리면서 키세 료타는 창문에 이마를 데었다. 자신의 입장으로선 지금 그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다시 바람이 세게 일었다. 눈발이 휘날리고 그의 앞머리가 흐트러졌다. 갑작스런 바람의 공격을 받은 탓에 그가 눈을 깜빡이며 이리저리로 시선을 흩트렸다. 그리고 그 끝에 자신이 와 닿는 순간. 눈이 마주친 걸까? 그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저 자신을, 운동장 끝을 향해 올곧게 뻗었던 그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키세 료타는 운동장으로 내려갔다. 조급할 것 무엇 하나 없었을 터인데. 턱까지 숨이 찰 정도 재빠르게 복도를, 그리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갔다. 차가워진 공기 때문일까, 딱딱한 계단의 표면위로 송골송골 맺힌 서리들이 굳어 미끄러웠다. 제법 거칠다시피 문을 열어재낀탓에 바람과 부딪치며 문은 둔탁한 소리를 내었다. 키세 료타는 서둘러 운동장을 휙휙 둘러봤다. 그 구석 한 켠에 여전히 쪼그리고 앉아있는 동그란 두상을 발견하고서야 그제야 키세 료타는 한숨을 쉬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조급하게 내려왔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걸까. 남은 건 느긋한 고양이인 채 발걸음을 옮기는 그였다. 가까이 다가갈까, 싶었지만 두어 발자국, 그와 자신 사이에 거리를 남겨둔 채로 키세 료타는 한참이나 쿠로코 테츠야의 목덜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까이서 바라본 목덜미는 멀리서 바라보았던 것과 달리 색이 더 붉게 올라있었다. 이러다 감기라도 걸리는 게 아닐까싶어 키세 료타는 그의 이름을 부르기로 했다. 그 순간이었다. 세차게 바람이 일었다. 저도 모르게 키세 료타는 어느 샌가 쿠로코 테츠야의 목덜미를 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다.

 

갑작스런 접촉에 놀란 그가 움츠러들며 목덜미가 작게 실룩였다. 동시에 겁에 질린 듯 한 하늘색의 눈동자가 자신을 담고 있었다. 상대를 확인하자 안심한 듯 풀리는 어깨에 왠지 모를 가슴의 일렁임을 느끼며 키세 료타는 입을 열었다.

 

“안 추워요?”

 

걱정스런 마음과 다르게 뱉어지는 말은 여실 없이 쌀쌀맞았다. 네, 그러나 대답과 다르게 목소리의 끝이 떨리고 있었다. 애써 추위를 감추려는 듯 그는 미소를 띄웠다. 그러나 마주선 채로 웃고 있는 입술 끝의 떨림이 선명하게 자신의 눈에 보여 키세 료타는 이마를 찌푸렸다. 그 뒤로는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평소에도 복도를 지나치면서 가볍게 인사를 나누거나 할 뿐인 사이었기에 대화가 이어진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할 법했다.

 

내가 왜 내려온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키세 료타는 차마 자신을 마주본 채로 고개를 세우지 못하는 그의 뒤통수를, 더 정확히는 그 아래에 뻗어 내려진 목덜미를 보았다. 그슬린 듯 붉게 올라있는 부분아래가 뽀얬다.

 

키세 료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목도리를 풀어 그의 목에 감았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를 향해 그 어떤 말도하지 않았다. 그저 목에 목도리를 감아주고선 그는 다시 교실로 돌아갔을 뿐이었다.

 

그가 왜 자신에게 목도리를 주고 간 걸까, 홀로 남아 쿠로코 테츠야는 그저 가만히 목도리를 손에 담은 채로 서있었을뿐이었다.

 

 

 

 


 

오전 나절부터 계속해서 눈이 내린 탓에 돌아가는 방과 후의 길은 평소보다 그 추위가 더한 것만 같았다. 어깨고 턱이고 할 거 없이 쉴 새 없이 떨리고 있었다. 설상가상 무릎까지 부들거리고 있어 걸음을 옮기기가 힘겨웠다. 무엇보다 목도리가 사라져 휑하니 빈 목으로 자꾸만 바람이 파고드는 탓에 제대로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추위에 떨고 있는 자신이 안쓰러워 보였던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모모이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키쨩, 목도리는 어떡하고 떨고 있는 거야?”

“목도리? 이 녀석에게 그런 게 있었어?”

“있었어! 아이보리색으로. 이거 하나면 겨울은 문제없다고 입이 닳도록 자랑했는걸.”

 

토닥거리듯 대화를 나누는 그들을 보며 키세 료타는 평소와 다르게 비어, 휑한 목덜미를 매만져보았다. 손안에 추위가 한 움큼 잡히고 있었다.

 

“……잃어버렸어.”

 

별 거 아닌 사소한 일이라는 듯 키세 료타는 말을 뱉곤 다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뒤 따라오며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키세 료타는 추위를 털어내듯 어깨를 떨어보였다. 그럼에도 추위는 쉽사리 자신의 몸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굉장히 춥네, 뱉어진 입김이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있었다. 어느 샌가, 눈이 그친 하늘이 맑았다……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