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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바스

[황흑/키세쿠로] 전망 좋은 방

엘리스.aliceeli 2017. 8. 2. 20:29

전망 좋은 방

키세 료타 X 쿠로코 테츠야


* AU 설정 주의.

* 눈이 보이지 않는 쿠로코와 그런 쿠로코를 만나게 된 키세의 이야기


*


전망 좋은 방이었다. 우선 채광이 좋았다. 천장에 매달린 에어컨이 작동중인데도 불구하고 적당히 서늘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마도 유리문을 투명하게 통과한 볕과 싸늘한 공기가 몸을 섞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거실은 적당하게 넓고 의아하게도 벽면을 제외한 중심부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정말로 그 무엇도 놓여있지 않았다.


한쪽 벽은 제목이 없는 양장본들이 빼곡이 꽂혀있는 서재와도 같았고,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24인치 벽걸이 텔레비전에 제 허리께만한 스피커와 무드등 따위가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아주 좁은 간격으로 놓여진 소파 한 쌍. 한쪽은 하품이 날 정도로 이런 날이 아니였다면 절대로 제 인생에 있어 단 한 번도 눈으로 담지 않았을 벽이었고, 반대는 어딘지 모르게 유명한 전자제품 매장의 한켠을 떼어다 놓은 듯 한 모습이라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이 방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건 조화롭지 않은 이 벽면이 미묘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게끔 만드는 그것덕분이었는데, ‘그것덕분에 이 방은 전망이 좋았다.


풍경일까나. 이질적인 양 벽면을 사이좋게 화해시키기라도 하는 선생님처럼 인자한 볕이 바닥에 묵묵히 제 온기를 덧바르고 있었다. 깨끗한 바닥에 닿을 때마다 쨍, 하고 소리가 날 것만 같이 환한 빛의 반사광이 이따금 제 눈을 찔러오기도 했다. 이런 집에 산다면 일조량이 적어 우울증이 걸리는 일 따위는 없겠네, ‘키세 료타(黃瀨 涼太)’는 눈이 아릴 정도로 훤한 그 유리문을 향해 걸음을 옮겨내었다.


풍경은 연두색이었다. 곳곳에 물감처럼 번진 잡풀 따위가 눈에 띄었지만 그 외에 별다를 건 없었다. 제법 그럴싸한 외형을 갖춘 식물들이 즐비해 있었는데 그것들 모두가 평균적이지 않았다. 미니어쳐 가든이랄지, 덜자랐다기보다는 미처 관리가 소홀한 나머지 웃자라버린 모습이었다. 시야를 차단하는 담이랄 것도 없어 쭉 뻗어나가는 시선 끝에 걸린 녹빛 지평선을 보고 있자면 그곳은 마치 걷고 또 걸어도 영원히 끝이 나지 않을 길만 같았다.


키세 료타가 풍경을 좀 더 감상하기 위해 유리창을 향해 걸어갔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개울물 흐르는 소리처럼 부드럽게 허공에 흘러드는 문소리에 키세 료타는 유리창에서 물러났다. 말하자면 현관문 쪽으로 걸어가 다시 벽과 벽 사이에 서서 이 거실로 들어올 그녀를 기다렸다는 듯 맞이할 준비를 하기 위해 모퉁이를 주시했다. 들어오자마자 인사를 건넬 참이었다.


현관과 거실을 잇는 작은 통로가 인기척에 침묵 속에 발광하는 센서등에 의해서 밝아짐이 느껴졌다. 바닥으로 희미한 사람의 그림자가 등장했다. 그림자를 이어 등장해보일 그녀를 향해 키세 료타는 여느 때처럼 반가워요!”라고 말 할 생각이었는데,


이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카시군?”


생각지도 못한 두 명의 남자가 등장인물로 출현해버렸다. 제 시나리오에는 없던 인물이었다.

3P라던가 이상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냐…… 이런 이야기는 전혀 못 들었는데, 키세 료타는 작게 혀를 찼는데, 세 사람 사이가 어찌나 조용했던지 그 자그마한 혀놀림이 메아리처럼 울리며 모두의 청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이건 강아지의 소리가 아닌데요……?”


그야 그렇다. 제 겉을 감싸고 있는 포장지나 그럴 듯한 였지 내용물은 명백히 사람이었으니까.


미안, 테츠야. 네 강아지에 착오가 생긴 것 같아.”


붉은 머리칼을 지닌 그 사내는 왼손으로 미간을 꾹꾹 누르며 오른손만으로 능숙하게 휴대폰을 건드리고 있었다.

착오? 착오라…… 으레 있는 일이다. 품종이 마음에 들지 않다던가 눈초리가 사나워 기분나쁘다던가 무슨 천생연분이니 하늘이 점지해준 인연을 만날 것도 아니면서 촉이 오지 않았다며 저들을 반품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제겐 예외였다. 처음으로 반품되는 상황인 것이다. 그것도 그의 착오.


착오? 착오로 지금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게 했단 말인가, 그리고 설사 착오라 하더라도 감히 저를 반품하는 일 따위는 스스로 인정할 수가 없었다. 키세 료타는 휴대폰을 자연스레 귀로 가져다대는 붉은 머리의 그를 향해,


골든 리트리버라면서요. 순하면서도 제법 활기찬 녀석으로. 한 마리. 아니던가?”


주머니에 한쪽 손을 꽂자 자연스럽게 짝다리를 서게 되었다. 그는 제법 곤란하다는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여태 그 붉은 빛에 가려져 인기척조차 희미한, 말하자면 무의식중에 들이쉬는 날숨과도 같이 제 몸에 가뒀던 사실도 잊고 다시 방류해버리는 들숨처럼 무게감 없이 그 어떤 인지도 없이 속절없이 바스라져가는 그러한 물질의 것처럼 희미하게 하늘로 풀어지는 허공의 성질처럼 옅은 하늘색 머리칼을 지닌 남자가 그의 뒤로부터 서서히 양지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정말로 희미한 남자였다.


사람이군요.”

테츠야,”

강아지를 데리고 오신 분인가요?”


목소리도 희미하고 작았다. 거슬리지 않게 적당한 음조를 지닌 이 평이한 목소리는 그 어떤 특질도 없어 삽시간에 타인의 소음에 묻힐 정도로 평범했다. 귀기울여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작은 음성이었다.


지금 나랑 장난해요? 보면 알잖아요. 강아지라니……


신경질적으로 그에게 내뱉은 말은 유별히 날카롭거나 기분을 훼하게는 만들어도 난자할 만한 언어는 아니었다. 붉은 머리를 지닌 사내의 얼굴이 제법 험악해졌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을 귀에서 떼어내곤 저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눈에 적의가 물들어있었다.


나는 괜찮습니다. 아카시군.”


투명한 목소리가 물처럼 낙하한다.


미안합니다. 나는 볼 수가 없어요.”


투명한 목소리는 정말로 평이하고 평범해서 너무 하잘것없이 매일 아침 발로 짓뭉개며 지나가는 보도블럭보다도 더 존재감이 없어서,


착오가 생긴 것 같아요. 우선은 진정해주세요.”


스스럼없이 제 살점을 말라 바스라트리는 모래알갱이처럼 힘없이 귓전에 맺혀온다.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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