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력, 157년. 텐쇼인 가문을 주축으로 이루어졌던 중앙집권체제에 각 지방의 관료와 가문들의 반란이 들끓었다. 명목은 그럴 듯했다. 지난 백여 년간 이어진 텐쇼인 가문의 독재를 막아낸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으며, 노쇠한 왕이 더 이상 제대로 된 정치를 펼칠 수 없어 실리에 어긋난다는 게 두 번째 이유, 마지막은 텐쇼인 에이치. 그의 존재였다. 후계로 책봉되었던 그는 대체 어디로 사라졌기에 그 모습을 왕궁에서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인지, 그가 살아있기는 한 건지, 건재하다는 말만 앞세우지 말고 하루빨리 그를 왕위에 올려 실책을 방지하고 제대로 된 왕권을 건사해 보이라는 게 반정 세력의 주장이었다. 건사하지 않다면, 반정 세력을 주측으로 온건한 가문의 장자를 뽑아 황제의 자리에 올리겠다, 라는 문장이 적힌 편..
마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놀라 몸을 움츠렸다. 잔 돌멩이 하나가 바퀴에 걸리는 일만으로도 마차는 온몸에 성이란 성은 다 내듯 크게 흔들렸기에 그때마다 익숙해지지 않은 몸이 자꾸만 벌떡벌떡 일으켜 세웠다. 그 모습이 뭐가 즐겁다고 텐쇼인 에이치는 제 옆에서 웃음만을 터트리고 있다. 보기 드문 큰 웃음이었다. 저러다 또 기침을 뱉는 건 아닌지, 숨이 막히다며 끙끙거리는 건 아닌지 보는 이가 더 걱정할 정도로.“마차에 익숙치 않아서 그래. 조금만 지나면 익숙해질 거야.”“그렇게 말하는 형님은 익숙하신가 봐요, 매일 침대에만 누워계시던 분이시면서……”“아주 예전에 자주 타봤기 때문이야. 몸이 기억하고 있으니까.”“몸이?”“익숙해졌다는 말이야.”“제 말은……”이전에는 마차를 자주 타고 돌아다닐 정도로 건강해졌다는 ..
* 왕궁물로 레오츠카가 보고 싶어서 쓰기 시작했는데 레오가 등장이 1도 없어서 슬픈 글..... 열일곱이란 나이가 무색하게 스오우 츠카사는 세상 물정이란 몰랐다. 아마도 그건 그가 열일곱이란 나이가 다 되도록, 그만큼의 계절을 오직 제 가문의 둥지 속에서만 자란 탓일지도 모른다.수도, 수도라…….늦은 밤이 되었지만, 쉽사리 잠들 수 없었다. 서로가 공들여 시선만을 겹이어 가고 있을 때, 스오우 츠카사가 망설임으로 고개를 떨구었던 그 순간, 텐쇼인 에이치는 농담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가지런한 손가락으로 손등을 쓰다듬어 오고 있었다. 떨쳐낼까 싶은 두려움이 짙게 배어든 손짓이었다. 잘 길들인 애완동물을 간지럼 태우듯 혹 칭얼거리는 갓난아이의 입가에 물린 손가락질처럼 상냥했던 손짓에 스오우 츠카사는 그저 제 잇..
* 설정날조, 왕궁물로 레오츠카가 보고 싶어져서 쓰긴 썼는데…… 24절기를 모두 붙들어 제 몸에 붙여낸 4계절들을 통틀어서 쌓은 시간의 공든 탑들을 서력이라 말하던가, 내력이라고 불리우던가. 이곳에선 천력이라고 읊어지는 그 이름은 실상 텐쇼인 가문의 내력이라고 이름 붙이는 편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일국의 흥망성쇠에 그토록 친밀하고 밀접하게 생과 사를 함께 한 자들은 없을뿐더러 일맥상통하고 있던 가문은 없었기에.텐쇼인 가문에 장자가 태어나면 그는 훗날 황제가 된다, 황자가 되기도 전부터 그는 황제에 버금가는 권력과 지위를 갖는다. 지는 해와 떠오를 해를 저울질해본다면 쉬운 일이다, 사람은 언제나 저물어가는 현재보다야 한줄기 피어오르는 미래에 판돈을 걸기 마련이다.텐쇼인 가문의 장자를 두고 벌려지는 도박은..